[책 한권의 여유] 수퍼맘은 지쳣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어떤 사람의 슬픔을 진정으로 달래주는 것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랍니다. 다른 사람의 더 큰 불행이랍니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긴데 그럴 듯합니다. 설사 그것이 도덕과 도리에 살짝 어긋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엄마 노릇 힘듭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표도 나지 않는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전업주부도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상한 아내, 빈틈 없는 엄마 노릇하느라 동동거리다 보면 피곤은 둘째 치고 정신적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엄마는 미친 짓이다'(주디스 워너 지음, 임경헌 옮김, 프리즘하우스)는 그런 엄마, 아이들의 모든 욕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모성의 덫'에 걸린 보통 엄마들을 위한 책입니다.

18세기 청교도 목사들은 유모를 쓰는 것은 '죄로 가득한 나태, 허영, 이기심의 전형'이라 비난했답니다. 그 100년 후에는 우유병으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를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타락한 사람'이라 저주가 나왔다죠. '모성의 신화'덧씌우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란 이야기지요.

'완벽한 엄마교(敎)'는 전지구촌 현상인 모양입니다. 미국에선 현대 엄마들을 '미니밴 엄마'라 한답니다. 아이들을 학교와 각종 과외 활동에 데려가고 사교 모임, 자원봉사 등을 위해 끊임없이 운전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랍니다. 명강의를 찾아 서울 강남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우리 엄마들은 뭐라 부를까요?

이 책은 페미니즘을 소리 높여 외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일종의 넋두리입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늘상 불안해 하는 것이 나 하나만이 아니며, 이 시대 또는 어느 개인의 탓도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위안은 되지만 대안은 미약합니다. 계층, 전업 여부를 떠나 여성들이 연대해 '삶의 질에 대한 정치'를 일구자는 정도입니다.

내 아이의 엄마는 결혼 전 "자식들을 위해 봉사는 하겠지만 희생은 않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더랬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봉사와 희생의 경계가 희미해지더군요. 이제, 때때로 혼란과 후회를 겪는 그에게 이 책을 권할까 싶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