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없는 첫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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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82년 1월5일 밤은 실로 36년4개월만에 국민의 통행의 자유를 제약했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첫밤이었다.
역사에 길이 기록되어야할 이날밤, 많은 시민들은 제약 없는 자정후의 새벽거리를 활보하면서 오랜만에 되찾은 자유를 만끽했다. 깊은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는 하룻밤이었다.
시민들은 이밤을 대체로 차분하게 맞이했으며 조용히 보냈다. 통금해제의 기쁨을 맛보려는 시민들로 붐빌 것이 예상되던 유흥업소는 자정이 지나자 한가롭게 되었으며, 새벽1시의시가지는 통금이 있을 때와 다름없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통금이 임박해서 벌어지던 아귀다툼같은 귀가전쟁이 깨끗이 사라졌는가하면 하루 70내지 80건씩을 기록하던 서울시내의 교통사고도 40여건으로 크게 줄었다는 소식이다.
통금이 해제된 첫날밤을 이처럼 차분하게 보낼 수 있게된 것은 한마디로 성숙된 시민의식 탓으로 돌리고 싶다. 통금을 해제하면 유흥업소의 영업시간 연장으로 보안사범이 늘어날 것이라던 일부의 우려는 한날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해제건에 비해서 앞으로 몇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치안당국이 염려하고 있는바와 같이 도범을 비롯한 각종 범죄의 증가가능성이나 취중운전, 운전사와 승객간의 요금시비등 교통상의 문제점등이 그것이다.
사실 해제첫날밤은 경찰이 철야비상근무를 한 때문인지 눈에 띄는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이 무한정 비상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보면 방범상의 헛점을 노려 각종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경찰도 인력을 7천명가량 늘려 이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은 치안당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조심해서 지켜야한다는 인식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교통사고만해도 시간에 쫓긴 난폭운전, 과속운전보다는 취중운전이 크게 늘어날 것같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취중운전은 시계가 흐릿해지고 속도감각이 무디어져 사고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작년만해도 취중운전으로 인한 교포사고는 1천2백건이나 되었다.
앞으로 취중운전이 더 늘어날 추세라면 음주탐지기등 최신장비를 더욱 보강함으로써 적발를 철저히하고 벌칙의 대폭강화로 술을 마시면 핸들을 잡지 않는다는 생각이 몸에 배도록 해야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전인구의 3분의 2 이상되는 사람에게 통금은 생활의 일부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푸는데서 오는 「충격」이 다른 형태로 생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몇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통금해제가 국민들에 준 가장 귀중한 것은 국민들의 자신감을 북돋워 준 점이다.
타율에서 자율로,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바뀐 통금해제란 충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있는 자질과 능력을 우리들이 갖고있다는 사실을 해제 첫날밤 시민들은 훌륭히 입증했다.
4년후에 아시안게임을, 6년후에 세기의 제전인 올림픽을 앞두고 있대서가 아니다. 우리가 민주적이고 살기 좋은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성숙된 시민의식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통금과 같은 불행한 제도가 다시 있어서는 안됨은 물론이고 통금을 실시하던 때가 나았다는 얘기가 만의 하나라도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더욱 안된다.
모처럼 주어진 자율을 두고두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자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리고 방종하면 자멸이 있을 뿐이라는 점을 깊이 되새겨야한다. 통금해제 첫날밤 국민들이 보인 신중한 모습이 시민의식성숙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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