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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새내기 순경이 본 요즘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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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는 21일은 69주년 경찰의 날입니다. ‘경찰’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청춘들이 적지 않습니다. 경찰은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가운데 늘 상위에 오르곤 합니다. 실제 올해 순경 공채 지원자는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순경 공채 경쟁률은 평균 20대 1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청춘 세대는 어떤 이유로 경찰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요. 청춘리포트는 최근 경찰청이 20~30대 새내기 순경을 상대로 공모한 수기 120편을 입수했습니다. 수기를 분석해보니 경찰이 된 이유로 안정적인 고용과 직업적 보람 등을 꼽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청춘리포트가 새내기 순경들의 수기 120편 가운데 ‘톱4’를 선정해 그 주인공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미래의 경찰청장을 꿈꾸는 그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지만, 단정한 제복 뒤에 숨겨둔 발랄함은 여느 청춘들과 다름없었습니다.

서울 서소문동 중앙일보 본사는 경찰청과 직선거리로 불과 400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선지 중앙일보사 주변엔 경찰청장부터 말단 순경까지 제복 입은 경찰들로 늘 복작거린다. 13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 말끔한 근무복 차림의 남녀 경찰 4명이 들어섰다. 주변에서 늘 보던 경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매끄럽고 싱그러운 얼굴빛과 발랄한 말투…. 분명 경찰 근무복을 입었는데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젊은 끼를 주체할 수 없다는 표정들. ‘경찰인 듯 경찰 아닌 경찰 같은’ 남녀 순경 4명을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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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내기 순경들이라 그런지 제가 늘 보던 엄숙한 경찰들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네요. 경찰복을 입은 것만 아니라면 소개팅 나온 남녀라고 해도 되겠어요.(일동 웃음) 젊고 밝은 모습이 일선 현장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죠.

 ▶김기웅=“도움이라고요? 전혀 아니에요. 주취자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어린 놈의 XX가’입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800번은 들은 것 같아요. 저는 참을 수 있는데 40~50대 선배들한테까지 그러면 참기 힘들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경찰 월급엔 욕먹는 것도 포함돼 있다’는 말입니다.”

 ▶정지연=“젊은 여경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뿐 아니라 여자라는 것도 핸디캡일 때가 많아요. 출동 나가면 ‘왜 여경이 나왔느냐’는 소리를 많이들 하세요. 아예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분들도 많고요. 싸움을 말리다가 ‘아가씨는 빠져 있어’라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물론 속으론 저도 부글부글 끓죠. 그럴수록 못 들은 척하고 대신 눈빛으로 쏘아붙입니다.”

 - 요즘 2030 세대의 최고 선망의 직종이 경찰인데, 대체 왜들 경찰이 되려고 하는 거죠.

 ▶김태우=“대민 봉사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론 직업적인 안정성이 가장 매력적이죠. 요즘 취업도 힘든 데다 취직이 돼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잖아요. 전 사실 식품의약품안전처 10급 공무원 출신인데 각종 수당까지 포함하면 식약처에서 일할 때보다 경찰 월급이 딱 두 배 더 많아요.”

 ▶정지연=“전 대기업에서 근무했어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는데 2년 만에 사표를 던졌죠. 앞으로 20~30년 뒤를 생각하니 갑갑하더라고요. 다른 여자 선배들을 봐도 대기업에 입사해서 출산하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고, 육아휴직 등 각종 복지도 대기업 사원보다 경찰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경찰이신 아버지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경찰의 멋진 모습을 늘 동경해왔던 것도 제가 경찰이 된 중요한 배경이고요.”

 - 또래 범법자를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박성아=“얼마 전 대리기사를 폭행해서 지구대에 온 스물두 살 여성 주취자와 씨름한 적이 있어요. 지구대에 와서 저한테 계속 욕을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운전을 해달라고 떼를 쓰고…. 그러더니 ‘나도 경찰 준비 중인데 우리 아빠가 지방청 경찰이다’며 소리를 치더라고요. 젊은 주취자들이 더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김태우=“전 또래를 잡으면 아예 처음부터 제가 형인 척해요. 조언할 때 그게 더 편하거든요. ‘내가 형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이런 식으로요. 근데 이상하게 젊은 여성 분들에겐 떨려서 그런지 개인적인 조언을 하기 힘들더라고요. 하하.”

 ▶정지연=“20~30대 범법자들을 보면 ‘넌 나중에 경찰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어요. 조금 철이 들다 보면 경찰 공무원 준비를 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범죄 기록이 남으면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경찰 하고 싶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죠.”

 - 새내기 라 서툴기 때문에 했던 실수가 있나요.

 ▶박성아=“전 아직도 순찰차 무전을 잘 못 알아들어서 큰일이에요. 어떻게든 잘 들어보려고 스피커가 있는 순찰차 대시보드에 아예 머리를 박고 있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김태우=형사사법포털(KICS)에 피의자 신원을 입력해야 하는데 제가 피의자 이름을 잘 못 알아듣고 ‘육천억’이라고 이름을 넣었어요. 그래서 모든 사건 관련 서류에 피의자 이름이 ‘육천억’으로 나갔죠. 나중에 일일이 조서를 바꾸면서 엄청 혼났습니다. 육천억씨라니….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 경찰이 되고 보니 아쉬운 점은 없던가요.

 ▶김기웅=“솔직히 경찰은 범인을 잡다가 옆구리에 칼을 찔리지 않는 이상 좋은 관점에서 언론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손가락질만 받는 직업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죠. 현장에서 욕설은 물론이고 경찰이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만,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죠. 이제는 국민들도 경찰 인권 문제를 깊이 고려해주시면 좋겠어요.”

 ▶박성아=“이건 아주 현실적인 얘기인데…. 범칙금 스티커 발부를 이동식 단말기로 하는데요. 발부 속도가 굉장히 느려요. 단말기가 3년도 넘은 거예요. 특히 지방은 여건이 더 안 좋아요. 서울에서 쓰던 기기나 ‘순마(순찰차)’가 내려오는 경우도 많아요. 국민은 우리 경찰이 지켜주지만 정작 경찰을 지켜주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장비라도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 순경 출신 경찰청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20~30년 뒤 여러분이 노려보는 건 어때요.

 ▶김태우=“꿈이니까 편하게 말해도 되죠? 저는 경찰청장 한번 해보고 싶어요. 지금 이금형 부산청장님도 순경 출신인데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성아=“저도 청장 욕심납니다. 여성 경찰청장, 멋지지 않아요? 하하.”

 ▶김기웅=“전 경찰청장까지는 모르겠고 지방청장 정도는 한번 꿈꿔 보려고요.”

 ▶정지연=“전 욕심이 별로 없어서…. 서울청장 정도? 하하.”

 인터뷰를 마친 뒤 “20년쯤 뒤 한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더 이상 청춘이라고 할 수 없을 그때, 지금의 ‘청춘 기자’와 ‘청춘 경찰’은 어떤 모습일까. 저들이 지금처럼 패기 넘치는 젊은 경찰로 꾸준히 성장한다면 20년쯤 뒤 중앙일보가 경찰청장과 서울청장, 지방청장을 한꺼번에 인터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행=정강현 팀장, 정리=고석승 기자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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