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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박정자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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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중략)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 문정희(1947~ ) ‘사랑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사랑에 관한 단순 명징한 정의
우리를 위로하는 시인의 마음

시 낭송이 직업이기도 한 내게 문정희 시인은 요주의 인물이다. 단 몇 줄의 시어로 가슴을 흔들고 눈시울을 뜨겁게 해 나의 일을 방해한다. 이 시도 그랬다. 나를 가장 울리는 대목은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다. 이 대목에 오면 온 몸이 찌릿찌릿하다. 구르다, 흩어지고 말면 너무 허무할까.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인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랑은 워낙 덩어리가 크니까 뭐라 말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핵심만 짚어주니, 시인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젊은 시절, 만나고 눈물짓고 헤어지고 그냥 끝나는 걸 사랑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사랑이었나 싶다. 사랑이란 두 글자를 설명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아직 이승에 있으니 시로, 연극으로 구르고 위로하며 살리라.

박정자 배우·대한민국 예술원 회원·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