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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노출패션에 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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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왜 성폭행했나요?”

 “빨간색 옷을 입고 밤중에 돌아다니기에 순간적으로….”

 성폭행범은 당당했다. 그 옆엔 핑크색 파카를 입은 피해자가 황폐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나이 지긋한 형사반장은 그 여성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그러기에 왜 그런 색깔 옷을 입고 밤늦게 돌아다니나. 그럼 표적이 된다는 것도 몰랐나….”

 불과 한 세대도 안 된 20여 년 전 경찰서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형사와 피의자, 그 남성들은 그녀가 빨간색 계열의 옷을 입은 게 성폭행을 부른 화근이라는 ‘신념’을 공유한 듯 보였다. 보다 못한 새내기 기자가 따졌다. “도대체 그녀의 옷 색깔과 성폭행이 무슨 관련이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겁니까?” 형사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성폭행 당하는 여자들은 옷에 문제가 많아요. 빨간색이나 짧은 옷을 입어서 범인을 자극하거든….” 그들은 여성이 ‘야한 옷’을 입을 때는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에 꽉 차 있었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옷을 입는다.’ 여성 입장에선 울화가 치미는 발상이지만 의외로 남성들은 진지하게 이렇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답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꼰대’들에게 여성의 옷입기는 남성을 위한 치장에 불과하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옷입기에 대해 이중적이다. 성을 파는 여성들은 야한 옷을 입어야 하고, 아내나 딸들은 될수록 많이 가려야 한다는 것. ‘노출=성의 상품화’라는 단순 도식. 그러므로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은 성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단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 여염집 여성들이 노출패션에 뛰어들었다. 여성들은 ‘너 보라고 벗는 게 아니라 내가 시원하자고 벗는 것’이라는 의상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했고, 이때 남성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또 배꼽티에 핫팬츠를 입은 여성을 음험한 눈길로 쳐다봤다간 성희롱과 성추행으로 잡혀가는 세상이 됐다. 피멘(Femen)이라는 우크라이나 여성운동단체는 웃통을 벗고 시위한다. 과거 여성은 성을 팔기 위해 웃통을 벗었지만, 그들은 항의하고 저항하기 위해 웃통을 벗는다. 이런 노출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축적된 꼰대들의 사고방식에 한 방 먹인 통쾌한 반전이기도 하다.

 요즘 여성의 노출은 양상이 복잡하다. 여배우들은 자신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한겨울에도 벗다시피 하고 레드카펫을 밟고, 여염집 여성들은 취향에 따라 노출을 하고, 저항이나 예술을 위해 옷을 벗기도 한다. ‘노출=성의 상품화’라는 단순 도식으로는 요즘 여성들의 노출을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어쨌든 노출패션은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이라도 그녀가 남자를 유혹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헛물켜선 안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전파했고, 여성들의 표현의 자유와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최근 숙명여대에서 축제기간 중 주점 스태프들의 의상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한마디로 ‘야한 옷 금지’다. 일부에선 가부장적 꼰대 같은 사고라며 비판했다. 하나 개인적으론 여성후배들이 자랑스러웠다. 주점에서 술을 팔려면 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여성에겐 치마 길이를 발목·무릎까지 자르는 것 자체가 투쟁과 도전의 역사였다. 요즘 거의 벌거벗고 다니는 자유를 누리는 것도 투쟁의 산물인 셈이다. 원래 투쟁의 과정은 거칠고 과격하다. 그러나 그 후 권리를 향유할 때는 보다 세련되고 품위 있어야 한다. 노출을 위한 노출,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노출이 아니라 미학적이고 사회적인 공감을 얻도록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젠 그럴 때가 됐다. 옷입기는 자신의 개성 표현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예의를 표현하는 사회적 의미도 크다. 이런 점에서 숙대의 도전은 여성후배들이 노출에 대해 새롭게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문제 해결 방식을 찾으러 나선 신호로 보여 즐겁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