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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폭발의 원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든사고는 사고가 날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폭발사고를 비롯한 모든 안전사고는 그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사전에 충분히 예방 또는 제거할 수 있는데도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이를 방치하는 데서 생긴다.
26일 서울도심의 대한화재해상보험빌딩지하상가에서 일어난 가스폭발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60여개의 대소음식점들이 밀집해 있고 업소마다 주방용으로 LP가스를 쓰고있어 화재나 가스폭발의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으나 안전수칙이나 안전조작에 대한 교육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LP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깔리게 되어있으며 공기중에 3∼15%만 섞여도 담뱃불이나 전기스파크 등 작은 불씨만 닿아도 폭발하게 되어있다. 특히 LP가스가 폭발하면 초속 2천6백m의 폭풍을 일으켜 웬만한 방벽은 날아가고 마는 엄청난 위력을 갖고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가스배관의 이음쇠가 터져 여기서 새어난 가스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고 한다. 더우기 사고가 난 건물은 안전을 가장 소중하게 다루는 화재보험회사의, 그것도 최근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당연하지만 그 때문에 이 건물의 지하점포마다 가스누설감지기·자동경보장치·환풍기 등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시설은 거의 완벽에 가까왔다.
하지만 이 같은 안전시설은 사고의 예방을 위해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 경보기는 제 위치에 설치되지 않아 정작 가스누출량이 위험량을 넘어섰는 데도 작동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스배급을 맡은 회사나 건물주인 보험호사측의 안전관리에 대한 무신경이 어이없을 뿐이다.
또 이만한 시설이라면 LP가스의 속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유자격자에 의해 만들어졌음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모든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이런 사고를 내게 했다면 유자격자의 책임은 엄중히 물어 마땅할 것이다.
산업화가 진척되면 될수록 가스의 수요도 늘게 마련이고 도심의 인구밀집현상도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하철이 개통되면 지하가는 시민생활과 더욱 밀접해진다. 따라서 앞으로 위험한 가스의 안전한 취급방법은 모든 국민들이 알아야 하고 생활화하여야 겠지만 행정당국 또한 보다 종합적인 보안대책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소방법은 대체로 완벽하게 짜여져 있다고 한다. 또 설혹 관계법이 미비하다해서 대형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시민들의 안전의식 제고와 함께 당국의 재해예방을 위한 보다 능동적인 자세가 아쉬운 것이다.
번연히 법이 정하고 있는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는 데도 이를 묵인하는 일이 없어야 함은 물론 안전시설을 갖추었다해서 형식적인 점검으로 그치고 만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의 근본적인 예방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고예방의 일차적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행정당국이 각종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소리 높여 계몽해도 정작사고의 위험을 안고있는 당사자들이 이를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소용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크리스마스무렵부터 연말년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들뜨기 쉽다.
그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고 주의력도 해이해지기 쉬운 때다.
10년전의 대연각화재사건을 비롯해서 지난 10년동안 대부분의 대형화재참사가 이 무렵에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모든 재해는 결국 인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자칫 해이해지기 쉬운 정신상태를 가다듬어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날리는 허망한 일이 없도록 한층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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