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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흐름 터줘 '금융 허브'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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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융 허브를 만들기 위한 전략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국제 자본이 우리나라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외환거래에 대한 규제를 앞당겨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환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만 남겨두고 2011년 이전에 규제를 모두 없앨 계획이다.

한국의 모든 금융시장과 산업이 허브가 되기는 어려운 만큼 유망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기로 한 게 두 번째 전략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대책 정도로 한국이 금융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환자유화의 수준이 여전히 낮은 데다 은행을 빼고는 금융회사의 규모가 아직 영세하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산업을 대형화.전문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구조조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외환자유화 조기 마무리=외환거래법은 돈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은 적극 장려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선 엄격하게 규제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그동안 두 차례의 외환자유화를 통해 이를 단계적으로 완화해 왔다. 1999년 4월 1차 자유화 때는 기업 및 금융회사의 영업과 관련한 외환거래를 주로 풀었다. 2001년 1월 2차 자유화는 개인의 증여성 송금이나 여행 경비, 해외 이주비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이때에도 해외 부동산 구입이나 사업 목적의 투자 등에 대한 규제는 그대로 뒀다.

남은 규제 중 가장 큰 덩어리는 기업.금융회사의 영업활동을 제외한 자본거래에 관한 것이다. 해외에서 돈을 빌리거나 증권을 사고 파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를 허용할 경우 급격한 자본 유출이 일어나거나, 반대로 해외 투기자본이 갑자기 몰려와 국내 외환시장을 어지럽힐 수 있어 자유화를 미뤄왔다.

이번에 정부가 풀기로 한 것은 2차 자유화 때 남겨 놓은 해외 부동산 구입 등에 대한 규제와 자본거래 허가제다. 전자는 재정경제부 장관 고시로 돼 있기 때문에 이르면 다음주 중 고쳐 즉각 시행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자본거래 허가제는 지난해 신고제로 전환하려다 1년 미뤘다. 이를 올해도 연장할지 여부를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가급적 전환 시기를 앞당긴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다만 신고제 전환 전이라도 가능한 것은 바로 규제를 풀기로 했다. 하반기부터 풀기로 한 다국적기업의 본사와 해외지사 간 하루 1000만 달러 범위 내 자금거래 자유화 등이 이런 예다. 2011년인 최종 시한을 앞당겨 2009~2011년에는 자본거래 신고제도 폐지할 예정이다.

◆ 선택과 집중 전략=채권시장은 일본.중국에 이어 아시아 3위의 시장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 비중이 지난해 0.48%에 불과해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40%를 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자산유동화증권(ABS)시장의 경우 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규모인 데다 상품의 다양성 등에선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구조조정시장도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충분한 경험을 쌓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구조조정이 더뎌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시장으로 꼽혀왔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침체할 경우 중국의 구조조정시장은 30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파생상품시장은 이미 주가지수를 대상으로 한 선물과 옵션의 거래량이 각각 세계 4위와 1위 규모로 성장했다.

세 가지 시장의 육성을 위해선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사모펀드 등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정부가 집중적으로 키울 금융회사는 이 세 가지로 압축됐다.

◆ 남은 과제는=현재 우리나라의 외환자유화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에 속한다. 외환자유화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상하이와 경쟁하기엔 여전히 버겁다.

금융산업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면에서 금융 허브가 될 수 없다면 잠재력이 있는 시장과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워 1~2개 분야에서 허브로 발돋움하는 전략이 차선책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국내 금융산업 구조조정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직도 국내엔 40여 개 증권사가 난립해 있다. 이런 규모로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와 경쟁해 한국을 금융 허브로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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