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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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캘린더란 말의 어원은 좀 의외다. 『고함을 지른다』는 뜻이다. 그 유래를 생각하면 아득한 옛날의 일을 눈에 보는 것 같다.
어느날 해가 지고 난 서녘, 어스레한 지평선위에 실날같은 초승달이 걸려있었다. 이것을 본 한 고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 고함을 질렀던가보다.
바로 이 초승달은 삭망월의 첫날에 볼 수 있다. 그날부터 하루, 이틀을 꼽아 보름이 지나면 망월, 또 보름이 지나면 그뭄이다. 이것이 옛사람들의 달력, 캘린더였다.
요즘은 시속도 바뀌어 초승달 아닌 바로 캘린더를 보며 환호하는 세상이 되었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무슨 정분으로는 달력 하나씩은 차례가 온다. 달력마다 새해달력을 열어보는 감흥도 각색이다.
흔히 옛 그림 아니면 풍물이 대부분이다. 어느 편이든 한달 내내 또는 두 달을 두고 매일같이(?) 보아야하는 달력이다. 첫눈에는 아름답지만, 며칠이면 싫어지는 그림이나 풍물도 있다.
올해는 불황의 그림자를 달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월력이 아닌 격월력이 유행이다. 감량경영 탓이리라. 그나마 연고 없이는 구하기도 어렵다.
예부터 우리나라엔 책력반사의 풍속이 있다. 해마다 동짓달이면 관상감에서 편찬한 새해달력을 궁중에 바친다. 궁중은 이것을 백관들에게 나누어주고, 그것은 다시 각 마을의 서리에게 동지선물로 전해지곤 했다. 백성들은 이 책력에 따라 농사도 짓고, 가내 대소사를 치렀다.
지금의 이런 풍속들이 기업체로 옮겨져 세밑의 큰 행사가 되었다. 사실 특정기업의 이름이 새겨진 달력을 사무실이나 집 안방에 걸어놓고 거의 매일같이 보는 일은 기업체로서는 여간한 홍보가 아니다. 그런 달력을 걸어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때로는 값지고 좋은 달력을 걸어놓는 것을 무슨 스테이터즈 심벌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래품 선호의 습성은 달력에서도 여전하다. 실은 이런 달력일수록 월도, 요일도 낯설고, 절기나 행사의 표시가 우리와는 다르다. 남의 나라 시류를 타고 사는 셈이다.
하긴 요즘 생활에선 달력은 장식일 뿐이다. 사람들은 손목에도 저마다 달력을 차고 다닌다. 일시는 물론 요일, 몇 월, 약속시간까지 알려주는 시계도 등장했다.
사람들이 달력의 그림이나 풍물을 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한가지 달력을 갖고도 열두달을 불편없이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나 종족이 복잡한 나라들엔 아직도 부족마다, 종파마다 력이 달라 개울 하나, 언덕하나를 두고도 알아볼 수 없는 달력이 걸려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달력문화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선진국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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