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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독재(獨裁)'와 '독주(獨走)'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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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는 박정희 정권을 흔히 '개발독재'로 부른다. 국민 의사를 타진하지 않고 집권의지에 따라 일방적으로 성장전략을 추진했다는 비난조의 함의가 담겨 있다. 산을 깎아 도로를 뚫고 논밭을 밀어 공단을 건설했다. 산기슭이 무너져 흉해진 자리에는 '자연보호'라는 글씨를 새겨넣는 역설적 장면을 수없이 보아 왔다. 그래도 4반세기가 지난 지금 국민은 그 덕을 조금 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산은 외국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푸르러졌고, 어쨌거나 공단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한 공장들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현 정권은 개발독재를 가장 혐오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개발의 깃발이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짓밟았던 그 어두운 시대를 끝장내고자 피로 맹세한 사람들이다. 개발 대신 인권. 생태.환경.평화의 깃발을 꽂았고, 독재 대신 시민참여의 문을 활짝 열었다. 개발독재로 비뚤어진 국가를 원상회복시켜 '정상 국가'(normal state)로 만든다는 것, 이 과정에서 약간의 고통이 있더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참아달라는 것이 현 정권의 호소이자 통치 양식이다. 그 자체로는 매우 신선하다.

그런데 요즘 터져나오는 각종 게이트를 보면 정상 국가 프로젝트가 이런 것인지 또는 이런 것이어야 하는지 하는 의문을 억제할 수 없다. 현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의 스케일과 진폭은 이른바 개발독재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고, 그 결과도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S프로젝트는 50조원이 소요되는 대형 사업으로 서남해안 일대를 복합레저 기지로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이다. 여기에, 지방 곳곳에 혁신도시와 산업클러스터가 기획되고 있는 중이며, 지방으로 이주할 190여 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의 선별작업이 얼마 전 끝났다. 신행정도시는 기획 단계를 거쳐 토지 매입 단계로 돌입할 판이다. 앞으로 또 어떤 대형 개발사업이 선을 보일 것인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새만금사업과 원전센터 문제는 방치해둔 채로 전국을 들쑤시는 개발계획 때문에 전국 땅값이 치솟았고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지방민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었다. 강남 집값도 정부의 정책역량을 비웃는 듯하다.

정부는 사회에서 터져나오는 비판의 소리를 '균형과 분산'으로 입막음하려 하지만, 대통령이 그토록 관심을 보였다는 S프로젝트가 그 지역민의 소망을 담아낸 것인지, 나아가 동북아시대의 허브에 걸맞은 기획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제야 세간에 알려졌으니 지역민들이 알았을 리 없고, 복합레저타운이 무안-목포-해남을 구해낼 것인지도 미지수다. 아무리 읽어봐도 40세에 경력이 아리송한 김재복이라는 사업가가 주역을 맡은 행담도 사건은 코미디 같고, 유전게이트는 의욕충천한 젊은 정치인이 노련한 사기꾼에게 걸려든 것만 같은 인상이다. 개발독재를 혐오하는 정권이 균형과 분산을 명분으로 '개발독주'를 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집권기간 내에 어떻게든 성사시키고자 하는 조급함 때문에 급기야는 '개발폭주'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미래를 대비한 개발은 필수적이지만 그 방식에 대해 세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현행의 국토개발 모델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가,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성장을 촉진할 것인가의 문제다. S프로젝트의 시범사업 격인 행담도에 골프장을 만들고 수십 개의 횟집을 들어서게 하면 경제성장에 좋은가? 제2청사가 들어선 대전을 두고 바로 인접 지역에 행정도시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누가 봐도 정치적이다. '정치적 국토개발'은 인권.생태.성장과 어떤 관련을 갖는가?

둘째, 전국을 대상으로 한 개발 계획이 과연 비용 효율적인가? 개발독재는 뭔가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이 시대의 개발은 레저.행정.이주 등 생산과는 거리가 멀다. 미래 기획치고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전시효과가 승한다. 세금을 대폭 올려도 수삼년 내에 국가채무가 200조원을 돌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 실행 방식은 여전히 폐쇄적이다. 권한이 막강한 정부 산하 위원회일수록 이념과 사고방식이 비슷한 인사들의 유유상종적 상견례가 자주 일어난다. 그것도 자문을 넘어 집행의 사령탑이 되었다면, 이견(異見)을 물리친 독주의 가능성은 이미 '위원회 정치'에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개발독주의 정권이 개발독재를 심판할 자격이 있을까.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