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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산책] 국내 최고령 우승 골퍼 최상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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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최상호가 취재기자와 팔길이를 재보는 모습.

▶ 최상호가 남서울 골프장 18번 홀 그린 앞에서 자신의 골프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남=김춘식 기자
최상호는…
▶출생=1955년 1월 경기도 고양시 원당
▶가족=부인 안계숙(50). 2남
▶체격=1m70㎝.70㎏
▶프로데뷔=1977년(프로 도전 7수 만에 성공)
▶우승=KPGA 통산 43승(최다승)
▶수상경력:KPGA 5연속 MVP(81~85년), 상금 1위 10회

'최상호의 시대가 열렸다. 26세의 최상호가 상금 랭킹 1위(450만원)를 기록하며 한국 골프계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1981년 9월 3일자 중앙일보 스포츠면에 난 기사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났지만 최상호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96년 영남 오픈 우승(통산 42승)을 끝으로 퇴역한 듯했지만 지난달 28일 KT&G 매경오픈에서 우승, 건재를 과시했다. 중년 골퍼들에게 엔도르핀을 듬뿍 선사한 최상호를 1일 경기도 성남의 남서울 골프장에서 만났다. 그는 "목표는 50승이며 앞으로도 3~4년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이 넘쳤다.

◆ 자치기 대신 골프="초등학교 때 동네(경기도 고양시 원당)에 골프장(뉴코리아)이 생겼다. 구경 갔더니 구멍에 공을 넣는 놀이를 하더라. 친구들과 맨땅에 구멍을 파 놓고, 골프장에서 버린 닳아빠진 골프채나 나무막대로 골프 놀이를 했다. 자치기와 구슬치기.알령구리(구멍 넣기)의 중간쯤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뉴코리아 골프장의 손흥수 프로가 '하려면 제대로 하라'며 골프를 가르쳐 줬다. 그게 골프를 시작한 계기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뉴코리아 골프장 연습장에서 연습공 코인을 팔았고, 고양종고를 졸업한 뒤 골프가 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 긴 팔 원숭이=최상호의 키는 1m70㎝다. 그는 "동년배 중에서도 작은 축"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키에 비해 팔이 무척 길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직접 재봤다. 키가 1m77㎝인 기자보다도 양쪽으로 손가락 한 마디 반쯤 더 길었다. "우완투수의 오른팔이 왼팔보다 길 듯 스윙을 많이 해서 생긴 직업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최상호는 연습벌레다. 연습생 시절부터 무거운 쇠파이프를 하루에 1000번이 넘도록 휘둘러 팔이 길어졌다"고 해석한다.

◆ 웅크린 스윙 폼=그의 스윙 폼은 뭔가 어색하다. 세련되지 않다. 어드레스 때 지나치게 웅크리고 임팩트 때는 벌떡 일어선다. 아마추어라면 토핑을 내기 딱 알맞다. "좋은 폼은 아니지만 거리를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다. 허리를 수그릴수록 볼을 몸에서 먼 곳에 놓을 수 있어 스윙궤도가 커진다. 당연히 거리도 더 나간다"고 설명했다. 크지 않은 키를 긴 팔과 독특한 스윙 폼으로 만회하는 것이다. 최상호는 지금도 드라이브샷으로 290야드를 날린다. 웬만한 젊은 장타자 못지않다.

◆ "왕년에는 내가 최고"=81년 중앙일보에 "아직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다. 마이홈을 가지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던 최상호는 81년부터 5년 연속 프로골프협회 MVP에 오르면서 서울 홍제동에 24稙Ⅸ?아파트를 장만했다. 92년엔 상금과 인센티브를 합쳐 1억9950만원을 벌어 당시 운동선수 중 최고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프로복싱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이 1억9230만원으로 2위였고, 프로야구 해태의 선동열(현 삼성 감독)이 1억4200만원으로 3위였다. 최상호는 현재 청담동 50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2001년 빠제로와 5년간 5억원에 스폰서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 아들들은 취미로 골프를="두 아들이 있다. 그러나 골프를 시키지 않았다. 골프 선수로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아들들이 모두 공부를 잘했다. 장남 지욱은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뒤 현재 고려대 생명공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며 차남 민욱은 연세대 경영학과 1년을 마치고 현역으로 군복무 중이다. 그래도 취미로 골프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투어에 다니느라 집을 비운 시간이 많아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98년까지 해외 전지훈련을 했다. 어느 날 호텔방에 있다가 '가족을 떠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었다. 이후 전지 훈련을 하지 않고 웬만하면 가족과 함께 지내려 한다. 앞으로 미국 투어에 간다면 아내와 함께 다닐 생각이다."

◆ 아직도 꿈은 미국 진출="80년대 중반 미국 무대 진출을 시도했다. 86년과 87년에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갈 정도로 다부지게 도전했는데 거리의 한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지난해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미국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 도전했다가 지역예선에서 1타차로 탈락했다. 지난해엔 자신이 없어서 몰래 갔다. 올해는 자신이 있다."

'주말 골퍼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골프는 프로나 아마추어나 똑같다"고 한다. "나도 스윙할 때 '그립 제대로 잡았나', '스탠스 바로 됐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다음 '헤드업 하지 말고, 힘주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성남=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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