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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틀벗고 일상의 삶에 관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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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0여년의 연륜을 쌓아온 신문의「신춘문예」 행사는 신인발굴을 위한 잡지추천등 다른 어떤 형식보다도 한국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신춘문예 출신문인들이 문학의 각 장르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오늘날의 문단상황으로서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지망생들이 신춘문예행사를 가장 화려한 데뷔의 관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간단히 증명된다.
다소의 중복응모를 감안하더라도 매년 소설부문에서 2천∼3천명, 시부문에서 7천∼8천명을 비롯해 시조·희곡·평론등 5개이상의 부문에서 줄잡아 1만명은 훨씬 넘는 문학지망생들이「신춘문예당선」을 겨냥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와같은 숫자적인 의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근년에 이르러, 특히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응모자들의 점차적인 수준이 훨씬 높아졌을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문학에 대한 자세가 한결 치열하고 진지해졌다는 것이다.
당선작의 수준과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지만 예년의 경우 응모작품의 50%이상이 문학의 기본,창작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예심에 참여했던 문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70∼80%에 달하는 작품들이 문학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있어 예심에 특히 신중을 기하게된다.
82년도 중앙일보 소실응모작품들의 예를 든다면 응모작품의 수는 81년도와 비슷한 5백30편이지만 예심과정에서 쉽사리 탈락시켜버릴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아 대부분의 작품을 완독해야 했다는 박범신·유익문씨(예심참여작가)등의 얘기다. 꼭 연관지어 생각할수야 없지만 20대응모자가 70%로 전보다 월등히 많아진 것, 여성응모자가 60%이상으로 남성을 훨씬 앞지른 것도 음미해볼만한 현상이다.
작품자체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종전에 눈에 많이 띄었던 관념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줄어든 대신 일상적인 가벼운 인간관계를 소재로 하면서도 거기서 삶의 깊은의미를 추출해 내려는 경향의 작품들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관념의 틀을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종래의 신춘문예 「투」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응모자들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보여진다.
어떤평론가는 신춘문예 응모작품들의 이러한 경향을 가리켜 70년대소비문학에 대한 반성과 80년대 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두가지의미로 풀이하기도 한다.
응모자의 연령별(20대, 30대, 40대)·성별분포는 고르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인 분야는 시조와 문학평론. 특히 시조는 예년보다 응모편수는 다소 줄어든 3백20명(1인 3편내외)이지만 작품수준은 눈에 띄게 향상되어 60%에 달하는 약2백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려졌으며 본심에서도 당선작을 가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시조시단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지난 1년동안 중앙일보가 벌여온 시조짓기 캠페인의 영향으로보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21편이 응모한 문학평론은 편수도 예년에 비해 늘어났을뿐 아니라 응모작중 4∼5편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당당한 이론적 틀을 갖추고 있어 비평계의 밝은 앞날을 점칠수 있게 했다. 응모작중에는 연대작가의 작품론이 많고 특히 최근 전집을 완간한 최인열씨의 작품론이 5편이나 들어 있어 현대문제작가에 대한 문학평론가 지망생의 관심의 폭을 느낄 수 있었다.
응모편수나 작품의 전체수준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분야가 시와 희곡이었다. 1천2백명이 응모(1인 3∼5편), 약4천편을 기록하여 오히려 예년의 응모편수를 능가한 시부문에서는 관념의 유희라고나 해야할 이른바 난해시들이 여전히 많았고, 읽기 쉬운 작품들은 시의 본질에 조차 접근하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산문의 언어절제형태의 문학이 시라고 생각한 시인 지망생들이 아직도 많은 탓으로 권오운·이인해씨(예심참여시인)등은 보고 있다.
창작희곡이 거의 불모상태인 우리나라에서 신춘문예야말로 희곡작가의 보람있는 데뷔관문인데도 응모작품의 전체수준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눈에 띄는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춘문예의 경우 공연이 전제돼야 하는가, 활자가 전제돼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조차 아직 덜돼 있는 탓으로 보여진다.
희곡에서 거창한 문제의식이나 세련된 기교따위가 곡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주제의 참신성, 구성의 치밀성은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라고 심사위원들은 충고하고 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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