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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용·세탁소까지 정부가 개입할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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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영세 자영업과 재래시장 구조조정 대책이 나왔다. 자격증을 따야 제과점.세탁소.피부미용실 창업을 허용하고 경쟁력을 잃은 재래시장은 도태시킨다는 방침이다. 각론만 보면 그럴듯하다. 지나치게 높은 자영업 비중은 낮춰야 하고, 노후한 재래시장도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격증 제도를 강화하면 소비자에게도 이익이다.

그러나 좀 더 들어가면 현실과 시장을 도외시한 탁상공론 냄새가 물씬 풍긴다. 우선 퇴출대상과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기준부터 모호하다. 프랜차이즈만 지원하면 프랜차이즈가 난립할 공산이 크다. 지금도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들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야 할 판이다.

재래시장 대책 역시 선거 때마다 나온 재탕 삼탕식 정책에 불과하다. 도심에 위치한 재래시장 재개발은 고층 주상복합 외에는 대안이 없다. 개발이익은 지주들에게 돌아가고 영세한 임대상인들은 생계를 잃게 마련이다.

이번 조치로 퇴직을 앞둔 사람들은 "이제 뭘 해 먹고사나"하는 고민에 빠졌다. 퇴출되는 자영업자나 임대상인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가. 세금으로 자영업자들을 지원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도 과세 불공평을 투덜대는 샐러리맨들이 가만히 보고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는 입버릇처럼 "김대중(DJ)정부의 신용카드 사태로 처음부터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부동산값은 54%나 올랐고 저성장.청년실업.저금리.자영업 몰락 등 더 큰 후유증을 물려줄 판이다. 아무리 돈을 쏟아붓고 금리를 내려도 꿈쩍하지 않는 경제의 무기력증은 무엇보다 큰일이다.

발상을 바꾸어야 해법이 보일 것이다. 자영업.재래시장 대책 같은 땜질식 처방은 풍선효과로 인해 정책혼선만 빚게 된다. 일자리부터 늘려야 구조조정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경제부총리가 경고한 대로 성장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10년 남짓이다. 정부 주도형 토건사업이나 저금리로는 더 이상 경제를 살릴 수 없음이 증명됐다.

먼저 불안감을 진정시켜 소비와 투자심리부터 회복시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기업의 투자확대가 최대 관건이다. 발목을 잡는 출자총액제도나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는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기업 투자확대를 통한 성장은 지금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경제정책도 국제적 비교우위를 따질 때가 됐다.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까지도 얼마나 세련된 경제정책을 구사하고 있는가. 서투른 정책을 내놓고는 "아마추어가 더 아름답다"며 둘러대는 인사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지금은 말장난할 때가 아니다.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위기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