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라크, 총리 경질 … 민심 수습 나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프랑스의 유럽헌법안 비준 부결이 몰고온 후폭풍이 심각하다. 부결이 예상되기는 했지만 막상 큰 표 차로 부결되자 유럽 대륙은 큰 혼란에 빠져든 모습이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프랑스의 부결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 "오늘 4억5800만 유럽 시민은 어려운 순간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날 프랑크푸르트.도쿄(東京) 등 외환 시장에서 유로화는 7개월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 비준 작업 지속 촉구=각국 지도자들은 "유럽연합(EU) 헌법 비준 작업을 계속 밀고 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파문 최소화에 부심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EU 지도자들과의 전화 외교를 통해 "프랑스는 회원국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어 "유럽 통합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과 순번제 EU 의장인 룩셈부르크의 장 클로드 융커 총리 등도 "협약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네덜란드의 비준 가결을 촉구했다.

◆ 부결 도미노 우려=오늘(1일) 실시되는 네덜란드의 비준 국민투표도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네덜란드 공영 방송 NOS가 지난달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대는 59%에 달했다. 프랑스 국민투표 전날인 28일 실시된 조사보다 2%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반면 찬성은 43%에서 41%로 떨어졌다.

조사를 담당했던 모리스 데 혼드 연구소의 대변인은 "프랑스의 부결이 영향을 미쳤다"며 "네덜란드에서 비준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고 진단했다. 네덜란드는 국민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의회가 비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의회는 투표율이 30%가 넘으면 국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EU 탄생의 모태가 됐던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조약 서명국인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함께 유럽 통합을 주도해 왔다. 얀 페테르 발케넨데 네덜란드 총리는 "프랑스는 반대했지만 우리는 반드시 가결해야 한다"며 막바지 설득에 나섰다.

영국은 네덜란드도 유럽헌법 비준을 거부할 경우 내년 상반기에 실시할 예정인 비준 국민투표의 취소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최근 "네덜란드에서도 비준안이 부결되면 잭 스트로 외무장관이 6일 하원에 출석해 이 같은 방침을 공식 선언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과 함께 유럽 통합에 소극적인 폴란드.덴마크 등에서도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 수습 나선 시라크=시라크 대통령은 31일 내각 개편을 통해 민심 수습에 나섰다. 대중적 인기가 없는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를 경질하고 후임 총리로 자신의 측근인 도미니크 드 빌팽 내무장관을 임명했다. 드 빌팽은 외무장관 재직 당시 미국의 이라크전 참전을 반대하는 프랑스인들의 목소리를 훌륭히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