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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명이 떼로 공격 … 해경 10명 "죽을 수 있겠다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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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진 해경]

10일 오전 8시11분 전북 부안군 왕등도 서쪽 144㎞ 해상. 나포한 중국 어선을 끌고 가던 목포해경 소속 해경들 옆으로 중국 어선 네 척이 몰려왔다. 우리 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 동료 선원들을 구하러 나선 것이다. 선체 둘레에는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20여 개씩 달려 있었다. 이들은 나포된 배 좌우측에 어선 두 척씩 갖다댄 뒤 일제히 해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포한 중국 어선에 있던 해경 10명은 순식간에 60~70명의 중국인 선원에 포위를 당했다.

 중국인 선원들은 해경을 향해 칼과 맥주병을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했다. 일부 선원은 해경 두 명의 헬멧을 벗기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권모(39·경장) 검색팀장은 갖고 있던 K5 권총을 꺼내 공포탄을 쐈다. 하지만 더욱 난폭해진 선원들은 해경들을 밀치며 바다에 떨어뜨리려 했다.

 보다 못한 권 경장은 오전 8시30분 조타실 방향으로 실탄 한 발을 쏘며 경고사격에 나섰다. 권 경장은 이후 해경 조사에서 “팀원들이 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권총을 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해경 두 명도 권총을 쏘기 시작했다. 10여 발의 총성이 울린 오전 8시35분. 해경들은 선원들이 잠시 주춤한 틈을 이용해 타고 온 고속단정으로 일제히 옮겨탔다. 하지만 이미 선원들이 휘두른 흉기와 둔기에 해경 다섯 명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새 중국인 선원들은 일제히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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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들이 함정으로 거의 복귀할 즈음인 오전 8시55분 중국 어선에서 무전 한 통이 왔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으니 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1508함이 즉시 출동해 환자를 찾았다. 노영어 50987호 안에서는 쑹허우모(宋厚模·45) 선장이 해경이 위협용으로 발사한 총탄에 왼쪽 등을 맞아 폐와 간에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쑹 선장은 산소 소생기로 응급조치를 받은 뒤 헬기를 이용해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숨졌다.

 해경은 출동한 대원들과 중국 선원들을 상대로 쑹 선장이 사망한 경위와 총기 사용이 적절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해경의 총기 사용 매뉴얼에는 단속 과정에서 집단으로 공격을 받는 등 안전에 위협을 느낄 경우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해경은 노영어호 선원 19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해경 안팎에서는 “이번 사고는 예견된 것”이란 반응도 나온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실종자 수색에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면서 중국 어선 단속반 근무가 3교대에서 2교대로 바뀌었고, 이후 대원들의 피로 누적으로 단속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지면서 불법 어업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됐다는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남획과 오염으로 중국 측 해역 어획량이 확 줄면서 한층 더 우리 해역을 침범하고 있는 만큼 단속 인원 보강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측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고 직후엔 광주 중국총영사관 부총영사가 목포해경을 찾아 “아주 경악하며 강력히 불만을 표한다”고 말했다. 신화통신과 중국 최고 인터넷 매체인 펑파이(澎湃) 등 주요 언론은 이번 사건을 주요 뉴스로 취급했고 홍콩 문회보(文匯報)도 온라인 톱뉴스로 전했다.

최경호 기자,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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