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아닌 정권 겨냥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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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의 '북한 조이기'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3일 뉴욕의 북한 대표부와 접촉, 북침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한 뒤 북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미 행정부는 북한이 회담 불참 구실로 삼을 수 있는 강경 발언.조치를 계속하고 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북한 대표부 방문은 미국의 대화 의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회담 파국시 안보리 회부 등 다른 조치로 넘어가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란 '양날'의 성격이 있다"며 "미국의 '북한 조이기'는 양날을 가시화하는 행동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부시 행정부의 대북 메시지가 혼란스럽다"는 비판도 나온다.

◆ 북한 압박=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7일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새로운 전투의 시대에 우리는 국가가 아닌 정권을 겨냥할 수 있다"며 "이는 테러범들과 폭군들이 더 이상 무고한 생명 뒤에 숨어 안전을 느낄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폭정의 전초기지' 등 과거 발언에 비춰 북한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미 국방부는 지난 25일 9년간 북한에서 계속해 온 미군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을 돌연 중단했다.

또 미국은 찰스 카트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을 8월 조기 퇴임시킨다. 후임은 공석으로 남겨둘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다음달 6일 싱가포르 안보회의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할 예정이다.

◆ '북한 고립 시도'=LA타임스는 28일 "미 행정부 내에서 북한 정권을 더욱 고립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북한의 회담 복귀 가능성이 엷어지고 있다는 전망 아래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인 신호"라고 전했다. 전직 국무부 관리는 "평양에 나사를 조이려는 미 행정부의 일치된 노력"이라며 "미국은 북한 주변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조각을 짜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 비판=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낸 웬디 셔먼은 27일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외치면서 동시에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접근법은 평양을 대단히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한 '폭군' '정권 겨냥' 등의 표현은 북한이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온 문구다. 따라서 북한에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많은 대북 전문가가 '미국이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이 없다' '부시 행정부의 내분으로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 좌초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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