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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집중분석 FUND - 위험도 짚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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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얼마 전 200여억원의 선박펀드 자금을 끌어모은 A증권사 상품개발팀은 최근 바지(barge)선 매물 목록까지 훑었다. 바지선은 자체 동력 없이 예인선에 끌려다니는 작은 화물 운반선. 이 회사 관계자는 "선박펀드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투자자들이 몰려 일단 자금을 모았지만, 막상 투자 대상 선박을 구하지 못해 돈이 되지 않는 바지선까지 뒤지고 있다"고 한숨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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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수탁액이 5년여 만에 다시 200조원을 넘어서는 등 펀드시장이 부흥기를 맞고 있다. 특히 최근 잘 팔리고 있는 주식형 적립식펀드는 주가가 웬만한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때 맞춰 파생지수연계펀드.실물펀드 등 첨단 신종 상품들도 봇물처럼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펀드시장의 몸집에 걸맞지 않게 펀드 판매와 운용의 현장에선 각종 혼선과 시행착오가 속출하고 있다. 잘 팔린다고 소문만 나면 엇비슷하게 베낀 펀드들이 쏟아져 나온다. 펀드 판매사 직원들은 상품의 장점만 과대 설명할 뿐, 투자 위험을 알리는 것은 뒷전이다. 투자자들도 무작정 고수익 펀드를 내놓으라는 식이다.

◆ 난립하는 펀드=한국의 펀드 수는 현재 6000여 개로 가위 세계적 수준이다. 시장 규모가 우리의 60배인 미국의 펀드 수도 8000여 개에 그치고 있다.

6000여 개 펀드 중 국내 투자 여건을 꼼꼼히 살펴 자체 설계한 펀드는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판매되고 있는 펀드의 열에 아홉은 국내 상황을 무시한 채 외국 상품을 그대로 들여오거나 경쟁사의 인기 상품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본지가 29개 국내 및 외국계 증권.투신운용사 소속 상품개발.마케팅 담당자 등 펀드 전문가 109명을 상대로 한 설문 결과다.

응답자 중 "국내 실정에 맞게 기획된 펀드 상품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고 답한 사람도 17명이나 됐다. 펀드 전문가들은 이처럼 '졸속 펀드'들이 양산되는 주된 이유로 '상품개발 전문인력 및 개발시간 부족'(28%), '업체 간 과당경쟁에 따른 밀어내기식 상품 출시(26%)' 등을 꼽았다. 응답자들은 주식 직접투자처럼 단기 수익에 매달리는 펀드 투자자들의 '조급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 기본부터 다시 챙기자=전문가들은 펀드 업계가 눈앞의 신상품 출시와 마케팅.홍보에 매달리기보다 기존 펀드들의 수익률 관리로 신뢰를 쌓아나가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증권연구원 고광수 연구위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펀드 신상품들은 전문가들도 잘 이해하지 못해 헷갈릴 정도"라며 "펀드 시장은 아직 운용 실적보다 판매사의 입김이나 마케팅에 의해 좌우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펀드 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서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펀드는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 핌코의 토털리턴펀드 등 전통적인 주식.채권형 펀드들이다. 반면 틈새 상품격인 부동산 펀드 등 실물 펀드의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제로인의 이재순 팀장은 "독도 펀드.어린이 펀드 등 유행이나 시류를 좇아 쏟아지는 '테마형 펀드'의 출시도 좋지만, 기존 대표 펀드들을 믿음직한 장기 투자 대상으로 키우는 게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표재용.이승녕.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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