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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271>제75화 패션 50년(52)최숙자-전위패션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3M공존 시대라고는 하지만 미니의 매력을 못 잊어하는 젊은 층 여성들의 스커트 기장이 치올라 갈대로 치올라감으로써 70년9월 무릎 위 17cm의 미니를 입은 한 아가씨가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 3일 구류처분을 받자 새삼 각계에서 미니 찬반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같은 미니에 대한 찬반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여대생을 비롯한 20대 전후의 젊은 층에서는 미니가 여전히 위세를 떨쳤고, 간혹 미디나 맥시를 코트기장에 받아들인 여성들도 속에는 여전히 미니를 입음으로써 떨쳐버리기 힘든 미니의 매력을 십분 반증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패션쇼라면 무대를 갖춘 넓은 장소나 살롱 등 실내에서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노상쇼와 사이키 음악과 조명에다 고고 춤까지 동원한 이색 패션쇼가 시도된 것도 이 무렵인 70년도의 일이다.
장발에다 히피차림의 젊은 의성학도와 디자이너 초년병들로 구성된「11인 그룹」이 그해 6윌24일 YWCA 강당에서 벌인 이색 행사는 이름하여 『비키니 웨어 사이키쇼.』
전자악기가 쏟아내는 사이키 델릭 사운드에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환각 조명 속을 고고스텝으로 누비는 시드루 루크차림의 모델들-.
『생동하는 춤과 사이키 음악을 곁들여 움직이는 쇼를 갖고 싶었다』는 것이 주최측의 의도였다지만 『뭔가 유별난 행동으로 사회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젊은애들의 장난』이라는 것이 당시 대부분 패션전문가들의 느낌이었다.
이 쇼를 참관한 한 패션평론가는 『쇼에 나온 의상들이 모조리 초 노출형의 비기니 수영복이나 망사 따위를 쓴 시드루 가운 따위여서 애초 「입을 수 있는 옷」 과는 거리가 멀어 의상으로서의 실용성보다는 하나의 이색적인 구경거리였다』 고 평했다.
애초 이들이 의도한 사이키 음악에 의한 의상의 율동미보다는 모델들의 대담하게 노출된 몸매와 요란한 동작에 더 관심을 나타낸 관객들의 장난스런 반응도 이들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렇듯 우리나라 최초의 사이키 패션쇼가 사회의 냉담한 반응 속에 한낱 구경거리를 끝난데 비해, 패션 쇼를 거리로 끌고 나온 노상쇼는 나름대로의 의도만은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것 같다.
이 한국 최초의 노상 패션쇼로 화제를 모은 사람은 젊은 남성디자이너 손일광씨로 국제복장학원 졸업생이었는데, 본래 색다르고 기발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본인의 결혼식 때도 굳이 내게 주례를 부탁해서 거절하다 못해 여자로서 드물게 결혼식 추례를 선 일도 있는 제자였다.
이렇듯 기발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대로 손씨는 제1회 의상발표회를 「의상이란 본래 보기 위한 귀족예술이 아니라 입기 위한 대중예술이므로 값비싸고 화려한 무대 위에 올려놓기보다는 거리로 나와야 한다」 는 취지를 내세워 70년12월 영하12도의 서울거리에서 쇼를 연 것이다.
명동의 옛날 국립극장 앞·이대입구·세종로 지하도 등 세 곳에서 펼쳐진 이 노상쇼에서 모델클럽 「스루」의 회원인「유리나」「보라미」등 16명의 모델들은 손씨의 친구이며 전위화가인 김구림씨의 연출로 삼각·사각·원의 구도를 그리는 등 매스게임을 연상시켜 추운 날씨로 종종걸음치던 서울시민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당시 한 때 풍미했던 전위예술의 자극으로 시도된 신선감에 의미가 있을 뿐, 패션 자체의 수준 향상이나 발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뜻이 있는 것은 못 된다는 것이 대다수 패션 관계자의 중론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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