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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스펙’으로 명문대 보낸 학부모·교사 결국 덜미…백일장·토론대회·봉사활동 등 조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짜 스펙’을 입학사정관제 서류로 제출해 학생을 명문대에 입학시킨 교사와 학부모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13년 입학사정관제 대학 입시에서 수상경력·봉사활동·해외체험 등을 허위로 작성한 서류를 제출해 부정 입학한 혐의(업무방해)로 학생 손모(20)군과 그의 어머니 이모(49)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에게서 금품을 받고 손씨가 가짜 스펙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현직 고교 교사 민모(57·구속수감중)씨와 권모씨(55), 홍모씨(46)도 함께 적발해 송치했다.

교사와 학부모가 짜고 이 같은 ‘입시 사기극’을 벌이기로 한 건 손군이 고교 2학년이던 2010년부터다. 이씨는 자신의 큰 딸의 입시 상담을 해줬던 서울 J여고 국어교사 민씨를 찾아가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민씨가 제안한 비법은 간단했다. “무조건 상을 많이 타면 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민씨는 우선 그해 10월 있었던 ‘한글날 기념 전국 백일장 및 미술대회’에 손군을 내보냈다. 손군이 백일장에 제출할 시 4편은 자신이 미리 작성해뒀다. 어머니 이씨는 민씨가 미리 써둔 시를 전달받아 아들 이름으로 원고지에 시를 적어 제출했다. 이 덕분에 손씨는 백일장 금상 수상자가 됐다.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어머니 이씨의 사기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들이 다니는 서울 K고 교사를 찾아가 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상의했다. K고 교사 권씨는 영어 발표대회에서 학생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을 제안했다. 2010년 11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열린 ‘G20 국가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청소년 발표대회’가 타깃이었다. 손군은 이 대회에 출전 등록을 한 뒤 실제 행사장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권씨는 손군 대신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김모군을 내보냈다. 김군은 행사장에서 손군 이름으로 발표해 상을 탔다.

손군은 이듬해 6월 열린 ‘녹색 성장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 창의적 해결방안 토론대회’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상을 받았다. 자신의 학교 교사 홍씨가 주선해 김모군이 대신 출전해 수상한 것이다. 어머니 이씨는 손군의 봉사활동이나 해외체험 실적 부풀리기에도 나섰다. J여고 교사 민씨는 양천구의 한 병원 관계자에게 연락해 손군의 봉사활동 실적을 121시간이나 부풀리도록 도와줬다. 또 이씨는 아들이 영국·스코틀랜드·노르웨이 등을 다녀왔다며 허위 보고서를 제출해 대입입시자료에 등록하기도 했다. 이씨는 수상 실적 등을 조작해주는 대가로 민씨에게 2500만원을 건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K고 교사 권씨도 대리 발표 등을 주선한 대가로 이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해당 진술을 번복한 상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손군은 이처럼 허위로 작성된 수상 실적과 봉사·해외활동 실적을 토대로 2012년 서울 유명 사립대 생명과학계열에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했다가 자퇴했다. 이듬해 역시 ‘가짜 스펙’으로 꾸며진 서류를 제출해 서울 명문대 한의예과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입학했다. 손군이 제출한 서류에는 봉사활동 기간과 해외활동 기간이 겹치는 등 허위로 작성된 흔적이 있었지만 두 대학은 이를 걸러내지 못한 채 손군을 합격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군이 명문대 한의예과에 입학할 당시 입학사정관제 경쟁률은 17.6대 1이었다. 손군이 허위 서류로 입학하는 바람에 탈락한 학생이 있었다는 얘기다.

손군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올 초 돌연 다니던 대학을 휴학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해당 학교 측은 손군의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 판결이 날 경우 입학 취소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 측에 입학사정관제 관련 서류 확인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라며 “수사 내용과 제도적 문제점 등을 교육 당국과 대학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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