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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厚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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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거꾸러뜨려야 할 적과 마주쳤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표정관리를 하겠는가. 눈을 부릅뜰까, 무시할까, 아니면 미소를 띨까. 마오쩌둥(毛澤東)은 맨 뒤를 택했다. 문혁(文革)이 한창이던 1967년 1월, 류사오치(劉少奇)를 상대했을 때다. 당시 류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마오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진지하게 학습하고 몸을 돌보게." 마오의 걱정에 류는 흔들렸다. 방심의 결과는 참혹했다. 이태 후 허난(河南)성의 한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접었다.

마오는 문혁 전 '후흑학(厚黑學)'을 익혔다. 후는 '면후(面厚)'를 말한다. 낯이 두껍다는 것이다. 흑은 '심흑(心黑)'을 일컫는다. 마음이 시커멓다는 뜻이다. 후흑학은 청 말에 태어나 중.일전쟁 막바지에 사망한 학자 리쭝우(李宗吾, 1879~1944)가 창안한 것이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낯가죽 속에 뻔뻔함을 감출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속마음에 음흉함을 감출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이처럼 귀한 보물을 몸에 지니고도 쓰지 않으니 천하에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만하다'(리쭝우,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

리쭝우는 "영웅호걸이란 한낱 뻔뻔하고 음흉한 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심흑'의 대가는 조조(曹操)다. "남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먼저 남을 버리겠다"고 한 조조의 속내가 시커멓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면후'의 고수로는 유비(劉備)를 꼽았다. 남의 울타리 속에 얹혀 살면서 전혀 수치로 생각지 않았다. 울기도 잘 울어 동정심도 잘 구했다. '유비의 강산(江山)은 울음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마오가 후흑학을 탐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80년대 홍콩에선 리쭝우 조명 붐이 일었다. 베이징(北京)에선 90년대 후흑학 관련 서적이 잇따라 출판돼 인기를 끌었다. '난세(亂世)의 처세술'로 각광받은 것이다.

최근 무슨 무슨 수식어가 붙는 잇따른 '개발(開發)' 의혹으로 뒤숭숭하다. 관련 인사들 또한 자고 나면 새 이름이 나오기 일쑤다. 제각기 주장도 달라 들으면 들을수록 헛갈린다. 혹시 이들의 표정에서 한번쯤 '후흑' 두 글자를 떠올려 보자고 한다면 너무 잔인한 주문일까.

유상철 국제부 차장 거꾸러뜨려야 할 적과 마주쳤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표정관리를 하겠는가. 눈을 부릅뜰까, 무시할까, 아니면 미소를 띨까. 마오쩌둥(毛澤東)은 맨 뒤를 택했다. 문혁(文革)이 한창이던 1967년 1월, 류사오치(劉少奇)를 상대했을 때다. 당시 류는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마오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진지하게 학습하고 몸을 돌보게." 마오의 걱정에 류는 흔들렸다. 방심의 결과는 참혹했다. 이태 후 허난(河南)성의 한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접었다.

마오는 문혁 전 '후흑학(厚黑學)'을 익혔다. 후는 '면후(面厚)'를 말한다. 낯이 두껍다는 것이다. 흑은 '심흑(心黑)'을 일컫는다. 마음이 시커멓다는 뜻이다. 후흑학은 청 말에 태어나 중.일전쟁 막바지에 사망한 학자 리쭝우(李宗吾, 1879~1944)가 창안한 것이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낯가죽 속에 뻔뻔함을 감출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속마음에 음흉함을 감출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이처럼 귀한 보물을 몸에 지니고도 쓰지 않으니 천하에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만하다'(리쭝우,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

리쭝우는 "영웅호걸이란 한낱 뻔뻔하고 음흉한 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심흑'의 대가는 조조(曹操)다. "남에게 버림받느니 내가 먼저 남을 버리겠다"고 한 조조의 속내가 시커멓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면후'의 고수로는 유비(劉備)를 꼽았다. 남의 울타리 속에 얹혀 살면서 전혀 수치로 생각지 않았다. 울기도 잘 울어 동정심도 잘 구했다. '유비의 강산(江山)은 울음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마오가 후흑학을 탐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80년대 홍콩에선 리쭝우 조명 붐이 일었다. 베이징(北京)에선 90년대 후흑학 관련 서적이 잇따라 출판돼 인기를 끌었다. '난세(亂世)의 처세술'로 각광받은 것이다.

최근 무슨 무슨 수식어가 붙는 잇따른 '개발(開發)' 의혹으로 뒤숭숭하다. 관련 인사들 또한 자고 나면 새 이름이 나오기 일쑤다. 제각기 주장도 달라 들으면 들을수록 헛갈린다. 혹시 이들의 표정에서 한번쯤 '후흑' 두 글자를 떠올려 보자고 한다면 너무 잔인한 주문일까.

유상철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