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 色다른 세상] 오렌지색 초콜릿, 검은 생크림 케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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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파리에서의 일이다. 다른 가게에 비해 유난히 북적대는 가게가 있었다. 초콜릿 가게였다. 프랑스인들이 초콜릿을 좋아한다지만 유독 이 가게에만 손님이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가게의 입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선명한 오렌지색이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건네받은 초콜릿. 그런데 그 색깔이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블랙 바탕에 선명한 오렌지색 초콜릿이었던 것이다. 맛 또한 프랑스 특유의 부드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포장을 주문하자 짙은 갈색 포장지에 옅은 오렌지색 리본을 달아 주었다. 오렌지색 악센트가 미적 감각을 대변하고 있었다. 파리의 이 초콜릿 가게는 색에 대한 센스로 매출을 쑥쑥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별생각 없이 진열하는 것보다 색의 배합을 고려해 진열장이나 쇼케이스를 디자인한다면 이전보다 매출을 몇 배 올릴 수 있다. 비결은 우선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하고, 다음은 볼륨감을 높여서 풍성한 느낌을 주도록 하며, 마지막으로 색의 콘트라스트를 분명히 하면서 의외성을 활용해 신선함과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첫째, 시선 집중. 진열대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위치는 다소 아래 방향으로 바닥에서 35~135cm 정도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골드 스페이스'라고 한다. 이 위치에는 특별히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색을 배치하는데, 노랑.오렌지나 붉은 계통의 컬러가 유효하다.

눈에 쉽게 들어오는 이런 색을 '유목색'이라고 한다. 광고나 영상편집에서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이 캐처(eye catcher)의 배치다. 아이 캐처란 시선을 끌어 압도할 수 있는 볼거리를 말한다. 컬러 마케팅의 경우도 아이 캐처가 강한 색을 적절하게 배치해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첫 단계 전략인 셈이다.

둘째, 볼륨감. 색은 넓은 면적으로 보면 그 색이 더욱 강조돼 신선하게 보인다. 야채판매장이라면 이 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야채를 볼륨감 있게 보이도록 색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토마토나 피망을 한꺼번에 산처럼 쌓아놓을 수는 없다. 실제보다 색의 면적을 크게 보이도록 하는 테크닉이 중요한데, 우선 거울을 진열대의 안쪽 벽면에서부터 천정까지 설치해 보자. 야채를 거울로 비추어 내면 색의 연속성과 확장성으로 인해 실제 이상으로 볼륨감 있게 보인다. 자연히 색의 면적도 넓어져 신선도도 강조된다. 실제로 동일한 면적에 거울을 설치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마지막으로 의외성과 콘트라스트다.

시선을 끄는 유목색이나 아이 캐처 색이라 하더라도 주변이 노랑이나 빨강 등 유사색인 경우는 동계색배열이 되기 때문에 유목성이 낮아진다. 이 경우 주변 색과 다른 반대 색을 놓거나 상품으로서는 드문 의외성 있는 색을 사용하면 시선을 끄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케이크 전문점의 경우 하얀 생크림 케이크, 베이지 계통의 스펀지 케이크가 일반적이고 검정 참깨 푸딩, 보라 계통의 몽블랑 등은 드물다. 이러한 의외성이 높은 케이크를 쇼케이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골든 스페이스의 중앙에 놓아 보자. 케이크에 검정? 이게 뭐야? 흥미를 유발하고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가게로 집중된다. 색의 의외성이 아이 캐처를 만들어내고 마케팅을 창출하는 것이다. 색의 의외성이란 사실은 색의 차별성의 강조이며, 대비의 강조다. 색의 대비는 식품을 진열할 때 매우 중요하다. 녹색 피망의 오른쪽에 빨간 피망을 왼쪽에는 노랑 피망을 놓으면 서로의 색이 강조돼 신선하게 보이고 그만큼 매출도 올라간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이상희 컬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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