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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특파원 우산혁명 현장을 가다] 황금연휴 망친 홍콩 상인들 "도로 점거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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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4일 홍콩 몽콕에서 민주화 시위에 불만을 품은 한 남성이 시위대가 도로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뜯어내려 하자 시위대가 저지하고 있다. [홍콩 로이터=뉴스1]

‘우산 혁명’이라 불리는 홍콩 시위에 역풍이 불고 있다. 점거 시위가 8일째 접어들면서 교통 정체 등 일상 생활의 불편은 물론, 생업에 영향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이제 도로 점거는 그만 두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점거 시위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처음엔 친중 단체 조직원들이 주도했으나, 지금은 일반 시민 특히 중소 상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친중 대 반중’이라기 보다는 ‘점거 대 반(反)점거’의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5일 오후 2시쯤 홍콩 정부청사 앞 타마르 광장 인근에서 확성기를 든 장년 남성이 갑자기 육교 꼭대기에 올라갔다. 시위의 영향으로 불가피하게 휴교중인 인근 중학교 학생의 학부모라고 밝힌 그는 시위 해산과 시위 지도자의 한 사람인 죠슈아 웡(17)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였다.

홍콩 지역 주민·상인들과 시위대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5일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한 장년 남성이 육교 난간에 올라가 시위 해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홍콩 로이터=뉴스1]

 주룽반도의 점거 거점인 몽콕에선 사흘째 시위대와 시위 반대 세력간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아르바이트’ 삼아 나온 폭력단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훨씬 많은 일반인들이 학생들에게 시위 중단을 촉구했다. 몽콕에서 잡화상을 하고 있다는 중년 남성은 “한달 임대료만 100만 홍콩달러 (약 1500만원)를 내고 있는데 손님은 평소의 3분의 2로 떨어졌다”며 흥분했다.

 관광업계가 받는 타격도 심각하다. 중국 대륙의 국경절 황금연휴로 연중 최고의 대목을 만났지만 중국 정부의 통행증(비자) 발급 제한 조치 등으로 홍콩을 방문한 요우커 숫자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후자오잉(胡兆英) 홍콩여행협외 주석은 “20∼30% 가량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내버스 노선의 47%가 운휴에 들어가 하루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도 불편을 겪고 있다. 학생들의 시위에 우호적인 논조를 유지해 온 유력 일간지 명보(明報) 는 5일자에 시위 중단을 촉구하는 전면 광고를 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각각 “도심 점거 시위가 홍콩 경제를 파괴하고 있다”와 “학계와 학부모들은 질서회복과 수업복귀를 강력하게 호소한다”는 제목이 달렸다. 그 밖에 “세계 각국과 중국 정부가 홍콩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이젠 학교에 돌아가야 할 때”란 의견 광고가 ‘보통 시민’ 명의로 실렸다.

 량전잉(梁振英) 행정장관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역공에 나섰다. 량 장관은 “홍콩 사회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며 “월요일부터 공무원의 정상 출근이 이뤄지고 막힌 도로를 정상화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던 그가 이번엔 시위대에게 주말까지 점거를 풀라고 통첩한 격이다. 홍콩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학생들에게 “(강제 해산으로)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정부와의 대화를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나흘 연속 홍콩 시위를 강력 규탄하는 기사를 게재한 것도 심상치 않다. 4일자 1면에는 ‘홍콩의 법치를 단호히 견지한다’는 제목 아래 “극소수는 홍콩을 통해 본토에서 색깔혁명(정권교체 혁명을 의미)을 이루려 하는데 이는 헛된 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명보는 “중국 매체가 전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 사건 때보다도 더 많은 분량을 홍콩 시위 비판에 할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위 지도부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점거 시위 제안단체인 ‘점령중환(아큐파이 센트럴)’의 베니 타이(戴耀廷) 대표는 “강제 해산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공무원들이 출근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주겠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이날 저녁 행정장관실 입구 봉쇄를 해제했다. 시위 지도부는 “교통 등 불편을 끼친 데 대해 홍콩 주민들에게 사과한다”면서도 “도로 점거를 완전히 푸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관영 신화사는 “이날 저녁부터 시위대 일부가 철수하고 있다”며 “전면적인 점거농성 중단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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