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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분석, 양성자 치료, 절제 최소화 … 유방암 환자 삶의 질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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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치료가 진화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으로 암을 진단해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방사선 치료의 고통을 덜어주는 양성자 치료가 도입돼 활용된다. 암 세포만을 골라 죽이는 표적치료는 항암치료에 대한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환자의 삶을 고려한 맞춤형 유방암 치료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양성자 치료기는 양성자를 빛 속도의 60%(1초에 지구를 4.5번 돌 수 있는 속도)로 가속시켜 암치료에 활용한다.[사진 국립암센터]

유방암 수술, 전절제보다 부분절제 늘어

유방암의 가장 기본적인 치료법은 종양을 잘라내는 것이다. 종양이 퍼진 부위를 도려낸다. 과거에는 전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가슴 전체를 도려내는 전(全)절제술이 일반적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손병호(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지금은 유방 조직의 일부만을 떼어내는 유방보존술(부분절제)이 주를 이룬다”며 “암 검진이 일반화하면서 조기 발견이 늘어 전이 가능성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절제술을 받은 뒤 겪는 심리적 후유증은 임플란트(실리콘)를 가슴에 채우는 유방 복원술로 극복할 수 있다.

흉터를 줄인 비수술 치료도 등장했다. 암 세포는 빠르게 성장하므로 일반 조직보다 혈관이 성글어 열에 약하다. 고주파 온열치료는 40도 이상의 강한 열을 종양 부위에 쏘여 암 세포를 죽인다. 반대로 암 종양에 동결 탐침(cryoprobes)을 꽂고, 낮은 온도의 액체 질소를 주입해 종양을 얼리거나 면역계의 변화를 유도하는 냉동요법도 등장했다. 단 1㎝ 미만의 종양 치료에 효과가 보고되고 있으며,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널리 이용되지 않는다.

정상조직 피해 없는 양성자 치료

영상 진단의 발전은 방사선 치료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 영상 기기로 종양의 위치와 모양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 정상세포는 보호하면서 암 덩어리만 선택적으로 방사선을 쪼이는 ‘3차원 입체조형 방사선 치료(3-DCRT)’가 대표적이다. 방사선 치료기와 CT의 기능을 합한 ‘토모테라피’는 종양 모양이나 수를 확인하며 방사선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의료시설이 부족해 수술 뒤 주기적인 방사선 치료가 어려우면 가속 부분 유방 방사선 조사(APBI)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선량의 방사선을 종양에 집중 투입해 방사선 치료에 걸리는 시간(33회·약 6~7주)을 줄인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암센터 정준 교수팀은 국내 최초로 40대 유방암 환자에게 수술 중 방사선요법(IORT)을 수행했다. 유방암 수술을 끝내고 곧바로 20GY(그레이·조사량의 단위, 일반 방사선 치료는 1회 1.8~2.0GY 이용)의 방사선 치료를 했다. 환자의 예후도 좋고 퇴원 후에 받는 방사선 치료 기간을 2주 정도 앞당겼다. 정준 교수는 “저위험군의 조기 유방암 환자는 향후 IORT가 전통적인 방사선 치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방사선 치료의 일종인 양성자 치료도 주목받는 신기술이다. 국내에서는 국립암센터가 세 대의 양성자 치료기를 운용한다. 지난해까지 유방암을 비롯한 2만여 명의 암 환자를 치료했다. 암의 크기·위치에 따라 양을 계산해 양성자선을 쏘면 암 조직에서 에너지 전달률이 정점에 이른 뒤 곧바로 소멸되는 게 이 치료법의 특징이다. 크기가 작아 집중 치료는 물론 주변 조직의 방사선 피해도 적다. 치료계획비가 400만~800만원, 1회 치료비는 60만~80만원으로 1인당 평균 1500만~30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암 전달 경로 파악하고 억제하는 게 숙제

환자 상태와 유방암 경과, 폐경 유무에 따라 유방암 치료법의 사용 시기와 순서가 결정된다. 더불어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 기법이 암의 진단에 도입돼 활용되고 있다. 떼어낸 유방암 조직을 온코타입DX(OncotypeDx)로 분석해서 환자의 예후와 치료 반응에 관여하는 21개의 유전자를 검사해 수치화한다. 위험 정도에 따라 보조치료 방법을 결정하므로 그만큼 환자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

약물이 암 세포나, 암 세포가 증식하는 원인만을 골라 치료하는 것이 표적치료다. 기존에 항암치료가 갖는 탈모나 장염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전통적인 표적치료로는 항호르몬요법이 꼽힌다. 유방암의 60~70%가량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에 반응하는데, 여성호르몬의 생성을 막거나(아로마타제 억제제) 이 호르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 만들어 암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유방암 환자 5명 중 1명에게서 발견되는 성장인자수용체(HER-2)나, 세포의 증식억제 신호를 막는 엠토르(mTOR) 단백질과 신호전달 경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유방암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허셉틴은 이 HER-2 수용체에 달라붙어 암의 성장을 막는다. 손병호 교수는 “최종적으로 암 세포의 모든 전달경로를 막을 수 있는 ‘종합 치료제’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정렬 기자 도움말=손병호 교수(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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