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베스트 닥터] 국산 항암제 임상시험 주도 … 신약 개발 터 닦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5호 23면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던 일본 의사가 방영주 교수가 손을 드니 반사적으로 흠칫 물러서더군요. 방 교수가 통계 오류에 대해 지적했는데, ‘설마’하고 확인하니까 방 교수가 정확히 짚은 것으로 드러났어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천재죠.” -서울성모병원 내과 김동욱 교수

<30><끝> 서울대병원 내과 방영주 교수

“방영주 교수는 한마디로 천재입니다. 우리 의료 환경이 좋아서 연구에만 전념할 수만 있다면 노벨상을 받을 재목인데….” -김성진 전 미국 국립보건원 수석연구원

‘천재 의사’라고 불리는 서울대병원 방영주 교수는 위암과 초기 임상시험 연구에서 ‘세계적 고수’로 인정받는 의사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 등을 포함하는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에 3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매달 2, 3번 해외에서 초청 받아 특강을 하거나 자문회의에 참석한다. 국제 학계에선 방 교수의 스케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회의 일정을 잡는 일이 적지 않다.

그는 학창시절까지 ‘공부벌레’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기중 1학년 때 성적표는 ‘하하하’였다. 한 반의 60명 중 40~60등에겐 점수 대신 ‘하’를 줬는데 원체 놀기를 좋아해서 성적표가 화려했던 것이다. 책상에 앉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경기고 2학년 때는 반에서 2등을 했다. 바둑 3급에 야구에다 포커까지 즐기면서도 ‘궁둥이와 의자가 달라붙어야 갈 수 있다’는 서울대 의대에 2등으로 입학했다.

의대 예과 때는 주 전공이 포커, 부전공이 당구·테니스 등이었다. 본과 때는 소프트볼 팀을 조직해 캠퍼스에 대항전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절절 매는 생화학·병리학 등의 과목에서 압도적 성적을 내고 수석 졸업했다.

방 교수는 의대 3학년 때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 교환교수를 마치고 귀국한 미남 교수가 동료 교수·전공의·학생 등 100여 명 앞에서 암 콘퍼런스를 이끄는 것을 보고 홀딱 반했다. 그 교수는 당시 ‘천재’, ‘의료계의 신사’로 불렸던 김노경 교수였다. 방 교수는 인턴 과정을 마치면서 김 교수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 달라”고 요청했고, 스승은 흔쾌히 승낙했다.

1987년 스승은 제자인 방 교수에게 “우리도 이제 임상시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사제는 국내 최초로 LG생명과학(당시 럭키 의약품사업부)이 개발한 약의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국내 최초의 ‘본격적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방 교수는 이후 SK제약의 ‘선플라’, 종근당의 ‘캄토벨’, 삼양사의 ‘제넥솔’ 등 국내 항암제의 임상시험을 이끌며 신약 개발의 토대를 닦았다.

방 교수는 국내에서 내공이 쌓이자 국제무대로 눈을 돌렸다. 2005년엔 벨기에의 에릭 반 쿠셈 박사와 함께 24개국의 140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전이된 위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슈의 ‘허셉틴’과 기존 항암제의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시험을 실시, 병용요법이 환자 치료에 효과적이란 사실을 입증했다. 2009년엔 화이자의 ‘수니티닙’이 스티브 잡스의 생명을 앗아간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2010년 방 교수는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USA투데이 등 세계 각국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한 화이자의 폐암 표적항암제 ‘크리조티닙’의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 때문이었다. 이 연구는 학회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됐다.

이듬해엔 세브란스병원 외과 노성훈 교수와 함께 국내 21개, 중국대만 등 해외 16개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암 수술 뒤 보조항암요법이 암의 재발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입증,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했다.

이들 임상시험은 모두 세계 각국의 의사가 표준으로 삼는 치료 지침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방 교수는 임상시험뿐 아니라 국내 연구 환경 구축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대한암학회 이사장을 맡아 학술지를 국제학술지에 등록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그는 환자에 대한 꼼꼼한 진료 설계와 실행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교수가 막 될 무렵이던 1986년(32세)엔 입원 환자만 100여 명을 볼 정도로 환자에 묻혀 살았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을 했다. 요즘엔 ‘훌륭한 제자들’ 덕분에 환자 수는 줄었지만 연구와 관련한 각종 모임 때문에 별을 보며 퇴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연구를 기획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 너무 행복해요. 암환자들의 치료성적이 해가 갈수록 개선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