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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고래 조상, 땅에선 먹고살기 힘들어 바다로 ‘이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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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25면

늑대처럼 생긴 발굽 포유류인 메소니키드. 고래의 조상인 메소니키드는 어깨 높이가 사람의 어깨 높이만 하다.

포유류는 공룡과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했다.

<16> 고래의 진화와 위기

하지만 공룡이 1억6000만 년 동안이나 몸집을 맘껏 키우면서 육상을 지배하는 사이 포유류는 기껏해야 생쥐만 한 크기에 머물렀다. 파충류들이 잠든 밤에나 활동하면서 근근이 살았다. 포유류에겐 해변도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괜히 접근했다간 바다악어를 비롯한 해양 파충류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자 지구의 환경이 급격히 변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거대 파충류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중생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은 주인공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파충류가 떠난 빈자리를 신생대 초기 포유류들이 채워 나갔다. 포유동물들은 대뜸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육상만의 일이 아니었다. 바다는 고래·물개·물범·바다코끼리·매너티·듀공 같은 갖가지 포유동물이 왕좌를 도전할 만한 장소가 됐다.

모든 육상동물의 조상은 고생대에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다. 바다 환경에 살았던 동물들은 육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수억 년에 걸쳐 끊임없는 자기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그런데 일부 포유류가 그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 길이 길고도 험난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육상동물의 고래화 과정 화석에 기록
신생대가 시작될 무렵 가장 번성한 포유류 무리는 발굽이 달린 원시 유제류(有蹄類)였다. 이들은 숲과 땅 위를 유유히 돌아다니며 육상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포유류가 됐고, 나뭇잎과 나무 열매를 주로 먹었다. 심지어 육식동물도 있었다. 늑대처럼 생긴 메소니키드(Mesonychid)는 초식을 하는 발굽동물과 연관이 있었지만 신선한 고기와 썩은 고기를 먹었다. 메소니키드는 소·양·사슴·낙타·돼지·하마처럼 발굽이 갈라진 동물의 조상이다.

지금부터 5500만 년 전은 신생대에서 가장 따뜻한 시기인 에오세가 시작될 무렵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은 아직 서로 연결돼 있지 않았으며 지금의 지중해 자리엔 테티스해(海)가 자리 잡고 있었다. 테티스해는 얕고 따뜻했으며 염분이 높았다. 메소니키드에서 진화한 파키케투스(Pakicetus)는 육지에서 먹이를 찾기에 지쳤다. 열대 사바나 기후의 환경은 사냥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데다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파키케투스는 육상동물에겐 낯설고 가혹한 곳으로 여겨지던 바다를 선택했다. 생태적 지위의 빈틈을 찾아간 것이다. 처음엔 바닷가에서 먹이를 구했다. 익숙해지자 바다 안을 들락거렸다. 초기엔 해안선에서 가까운 바다만 드나들었다. 그 사이에 주둥이는 점차 길어지고 이빨은 더 날카로워져 물고기를 잡는 데 유리해졌다. 파키케투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고래다. 그 이름은 라틴어로 ‘파키스탄(Pakistan)에서 발견된 고래(cetus)’란 뜻이다.

파키케투스는 전체적으로 늑대와 비슷하다. 돼지와 개를 교배한 종(種)으로 보이기도 한다. 고래의 조상인 파키케투스는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육상에서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부학적 특징이 고래의 선조란 것을 보여 준다.

‘걷고 헤엄치는 고래’란 뜻의 암불로케투스(Ambulocetus) 역시 파키스탄에서 발견됐다. 크기는 바다사자만 했다. 두개골과 이빨은 여전히 메소니키드와 비슷했지만 앞발과 커다란 뒷발엔 물갈퀴가 나 있었다. 암불로케투스는 펭귄이나 바다사자처럼 발을 노 젓듯이 움직이거나 물고기처럼 몸을 양 옆으로 움직여 헤엄치지 않았다. 수달처럼 몸을 위아래로 굴절시키며 헤엄쳤다. 이런 운동은 꼬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헤엄치는 오늘날의 고래들이 운동하는 방식의 전(前) 단계다.

일단 바다에 진입한 포유류는 그 서식지를 넓혀 갔다. 3500만 년 전엔 몸길이가 24m에 이르는 바실로사우루스(Basilosaurus)가 번성했다. 바실로사우루스는 뒷다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엉덩이와 넓적다리뼈의 흔적이 근육 속에 묻혀 있다. 머리 모양도 지금의 고래처럼 앞뒤로 길어졌고, 날렵한 몸통을 지녔다.

하지만 바실로사우루스 화석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자신이 본 것이 거대한 파충류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대왕도마뱀’이란 이름을 붙였다. 바실로사우루스는 도루돈(Dorudon·창날이빨)으로 이어졌고 지금과 같은 고래가 나타난 것은 2500만 년 전의 일이다. 이후 고래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지금은 모두 76종에 이른다.

고래와 발굽동물(유제류)은 모두 인도와 아시아가 충돌하고 테티스해가 막히던 시기에 등장했다. 이 무렵 바다소목(目)에 속하는 듀공과 매너티가 테티스해에 출현했다.

육상동물인 메소니키드에서 고래로 모습이 변해 가는 놀라운 과정은 화석 기록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화석은 부정할 수 없는 진화의 증거다. 고래 화석 기록은 진화적 변화를 보여 주는 뛰어난 본보기다.

수염고래의 수염은 사냥 위한 발명품
고대 고래가 등장할 무렵 따뜻하던 지구는 2500만 년 전부터 기온이 내려가더니 이어 혹독한 추위가 지속됐다. 환경이 바뀌면 생물도 바뀐다. 이제 열대와 온대 날씨에 적응한 고대 고래는 자리를 비워 주게 됐다. 그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오늘날 대양을 지배하는 두 종류의 새로운 무리가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두 무리는 이빨고래(향고래·범고래·돌고래)와 수염고래(대왕고래·귀신고래·혹등고래·참고래)를 말한다.

심해(深海)의 저층수(低層水)가 솟아오르면서 함께 운반된 양분이 수면에 공급되자 바다에 플랑크톤이 급증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플랑크톤은 갑각류의 먹이가 됐고, 갑각류는 수염고래의 주요 영양공급원이 됐다. 그 결과 고래의 진화가 촉발돼 종류가 다양해졌다.

여기서 잠깐! 어릴 때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은 흰긴수염고래(요즘 대왕고래라고 부르는)라고 배웠다. 그런데 흰긴수염고래의 그림엔 아무리 봐도 얼굴에 긴 수염은커녕 털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수염고래의 수염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수염은 고래 입 안에 있다. 그런데 사람의 수염을 생각하면 안 된다. 손톱과 같은 각질(케라틴)로 된 긴 세모꼴의 수염판 한쪽 가장자리에 빳빳한 각질 털이 달려 있다. 수염판은 참빗의 빗살처럼 차곡차곡 포개진 형태로 위쪽 잇몸에 달려 있다. 수염고래의 수염은 기막힌 진화의 발명품이다.

수염고래는 목에 주름이 있어 아코디언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듯이 늘리면 엄청난 양의 물을 삼킬 수 있다. 그 다음 입을 다물고 목구멍을 조이면 물은 빠져나가고 크릴새우와 플랑크톤은 입의 앞쪽에 있는 수염에 걸러진다.

이빨고래와 수염고래가 새롭게 등장할 무렵 바다표범과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같은 기각류도 해양 포식자로 등장했다. 육상동물 중 이들과 가장 가까운 육식동물은 곰이다.

어선 음파탐지기가 고래의 소통 방해
육지에 살던 고래가 느닷없이 바다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고래는 일찌감치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고래는 두개골, 이빨, 콧구멍, 앞다리와 뒷다리, 귀의 구조를 바꾸는 전략을 적절히 구사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귀다. 고래는 시각과 후각을 포기하는 대신 청각을 예민한 감각으로 사용한다. 뇌신경 중에서 청신경의 크기가 어느 동물의 것보다도 크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소리 전달 속도가 공기보다 훨씬 빠른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균형을 잡는 청각기관인 세반고리관은 크기가 작아졌다. 그래서 회전 같은 움직임에도 고래는 어지럽지 않게 됐다.

고래의 뇌는 먼 조상이 4000만 년 전 바다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이래 특별한 진화를 겪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뇌 무게는 체중의 2.3%이고 소는 0.08%다. 그런데 큰돌고래는 1%인 반면 대왕고래는 겨우 0.008%에 불과하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지능 발달은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압력을 받으며 이뤄진다. 그런데 바다로 돌아간 고래는 육상과는 달리 가뭄·추위 같은 극심한 환경 변화를 겪지 않는다. 몸집이 작은 물고기들에겐 해류·수심·수온·광도와 해저 암반이 큰 변화로 느껴진다. 하지만 몸집이 거대한 고래에겐 별다른 자극이 되지 않는다. 고래가 북극에서 적도를 거쳐 남극에 이르기까지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환경이 안정적이고 포식자가 없는 곳에선 작은 뇌로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거기에 굳이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래는 새끼를 한 번에 한 마리만 낳는다. 새끼는 태어날 때 꼬리부터 나와 익사 위험을 최소화한다. 어미는 새끼가 태어나면 새끼를 물 위로 들어 올려 숨을 쉬게 도와준다. 또 젖을 새끼 입속에 분사한다. 어미가 젖을 먹이는 기간은 1년 이상이다. 보통은 몇 년 동안 새끼와 함께 지낸다. 이모 고래들이 양육을 돕기도 한다. 적게 낳지만 생존율을 높이는 ‘소산소사(小産小死)’ 전략은 수천만 년 동안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고래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큰 몸집을 지닌 동물이다. 적도에서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고래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인류와 기계문명의 출현이다. 기계를 사용하는 인류는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았다. 해군과 어선이 사용하는 수중 음파탐지기는 고래들의 의사소통을 교란한다. 석유와 가스를 채굴하기 위한 지질 검사는 고래의 청력에 해를 끼친다. 이제 고래들은 수천만 년에 걸쳐 세운 전략과 달리 소산다사(小産多死)의 환경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래가 다시 육상으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육상에선 자신의 체중에 눌려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래의 진화는 장엄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가 언제 종영(終映)될지는 우리 인류에게 달렸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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