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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가 되기 싫다면

중앙일보

입력

아파트 관리비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온라인에서 ‘난방열사’로 불리우는 여배우 김부선(53)씨의 '맹활약' 덕분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인 김씨는 최근 “일부 세대가 부정하게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고 폭로해 화제를 모았다.

사실 아파트 단지는 눈 먼 돈의 집합소다. 수도권 3000세대 정도의 아파트 단지 연간 관리비 규모는 100억원 이상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 못지 않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일반 주민이 모르는 수익사업이 꽤 있다. 매주 열리는 장터는 물론이고, 단지 내 어린이집(분양 받은 경우는 제외) 등에서 매월 임대료를 받는다. SKT를 비롯한 이동통신사들도 관리사무소 등에 돈을 낸다. 통신안테나 설치에 따른 것이다. 엘리베이터나 게시판에 붙은 각종 상업성 알림글도 수입원이다. 단지 곳곳의 공용 창고들은 주민들도 모르게 임대돼 있다.

아파트 단지는 동네 상권에선 큰 손이다. 500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라 치자. 연 1~2회 단지 내 나무들을 손보는 데에는 적어도 2000만원 이상이 든다. 각종 오물이 지나는 횡주관 청소에 드는 돈은 3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지하 주차장 형광등을 LED등으로 교체한다고? 그렇다면 ‘4000만원이 넘게 들어가겠구나’ 생각하면 대충 맞다.

이런 류의 지출은 대개 동대표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단지 내 어디를 손볼지, 어떤 업체에 맡길지 결정하는 것도 이들이다.

‘우리 손으로 뽑은 동대표’가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리라 믿는다면 당신은 순진한 사람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는 소수에게 편익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전체 동대표 중 일부겠지만 소수의 부정한 동대표들이 자신의 이익을 맹렬히 추구한 반면, 다수의 입주민은 그 비용 지출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해서다. 이는 결국 전체 주민의 손해로 이어진다. 정치경제학자 윌슨은 이런 양상을 ‘고객정치’라고 불렀다. 소수의 고객(동대표 등)을 위한 자원배분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나쁜 동대표 몇몇에게 대부분의 주민이 ‘호구’를 잡혔다는 거다.

아파트만 이럴까. 최근 논의가 한창인 공기업 개혁이나 공무원 연금 개혁도 거의 비슷한 구조다. 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부채 총액은 523조2287억원이다. 정부 부채를 제외한 게 이렇다. 난 그런 돈을 쓴 적이 없다고?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국민이 메워줘야 할 돈이다. 쌓여가는 공무원 연금 관련 부담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관심이다. 우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동대표 회의록이라도 꼼꼼히 보자. 엉뚱한 조경업자 배만 불릴 이유는 없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 그게 공공부문 개혁의 시작이고 연금 개혁의 지름길이다.

이수기 경제부문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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