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우생순' 우선희 "금 땄으니 아이 가질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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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의 마지막 멤버 우선희(오른쪽)가 여자 핸드볼 우승이 확정된 뒤 골키퍼 송미영을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송미영은 우선희보다 세 살 많은 39세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다. [인천=오종택 기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한국은 덴마크와 연장전·승부 던지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깝게 패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금메달보다 더 큰 감동을 줬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라는 영화로 제작돼 유명해진 스토리다. 임오경(43·서울시청 감독) 등 당시 선수들은 다 현역에서 물러나고 딱 한 명 남았다. 우선희(36·삼척시청)다.

 그가 한국 여자 핸드볼의 부활을 이끌었다. 한국은 1일 인천 선학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일본을 29-19로 완파했다. 전·후반 60분 중 50분36초를 뛰며 5골을 넣은 우선희는 이번 대회 5경기 33골로 한국 선수 중 최다 득점자가 됐다.

 한국은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일본에 1점 차로 패했던 아픔을 깨끗이 되갚았다. 1990년 베이징부터 2006년 도하 대회까지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었던 여자 핸드볼은 다시 챔피언 자리에 복귀했다.

 우선희는 한국 스포츠에 모성(母性) 보호라는 화두도 함께 던졌다. 이날 관중석에는 우선희의 남편·시부모·친정 부모 등 온 가족이 출동했다. 아시안게임 결승전이자 우선희가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경기여서다. 그에게는 코트 밖에서의 중요한 계획이 있다. 2004년 10월 결혼했지만 아직 자녀가 없다. 2년마다 찾아오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때문에 조금씩 미룬 게 벌써 10년이 됐다. 2년 전 임신에 성공했지만 유산됐다. 1m72㎝·55㎏의 깡마른 근육질 몸은 아기를 넉넉히 받쳐주지 못했다.

 우선희는 “남편과 가족의 격려로 마음 놓고 뛸 수 있었다. 내가 없어도 후배들이 리우 올림픽에서 잘해내리라 믿는다. 이젠 아이를 갖기 위해 살부터 좀 찌워야겠다”며 웃었다. 우 선수의 남편 전정현(41)씨도 “결혼한 지 10년 됐지만 잦은 합숙과 해외 원정 때문에 함께 지낸 날짜만 따지면 1년 남짓이다. 앞으로 여행도 다니면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영철 대표팀 감독은 우선희를 좀 더 원한다. 임 감독은 “우선희는 선수로서의 미덕이나 태도가 세계 최고다. 20대 못지않게 체력도 좋아 40, 50세에도 충분히 뛸 수 있는 선수다”며 “2세를 낳고 돌아와도 우선희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 출산 후 뛰는 모습을 후배에게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출산을 하면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문화를 바꾸자는 뜻도 담겨 있었다.

  경기력과 모성 보호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다. 미국은 여자 구기 종목 대표팀의 해외 원정이나 합숙 때 베이비시터를 동행하곤 한다. 선수는 훈련이 끝나면 모유 수유를 하며 아이를 돌본다. 한정규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은 “출산을 하겠다는 우선희 선수의 뜻을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출산 후 선수로 복귀한다면 베이비시터를 두는 등 육아와 훈련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우 선수는 출산 후 복귀에 대해 “30대 초반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나이가 많아서 어떨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인천=이해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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