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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김현우, 역대 3번째 그랜드슬램 달성

중앙일보

입력

 
김현우(26·삼성생명)는 담담하게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레슬링 사상 역대 세번째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우승)의 주인공이 됐지만 그의 얼굴은 담담했다.

김현우는 1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5㎏급 결승에서 가나쿠보 다케히로(카자흐스탄)를 4-0으로 꺾었다. 김현우는 1피리어드 초반 파테르 공격에서 상대를 돌려 1점을 먼저 얻은 뒤 뒤를 잡아 추가점을 얻었다. 가나쿠보도 곧바로 허리를 잡으면서 반격해 1점을 땄다. 일본 벤치는 가나쿠보의 득점이 1점에 그치자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그러나 오히려 가나쿠보의 공격이 무효로 인정돼 김현우는 2-0으로 앞서게 됐다. 김현우는 이후 2점을 보태 4-0의 완승을 거뒀다. 김현우는 매트 가운데 태극기를 놓고 관중들에게 큰절을 했다.

김현우는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레슬링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66㎏급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아르멘 나자리안(불가리아)을 꺾고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수려한 외모의 그가 시퍼렇게 눈이 멍든 얼굴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연속 '노골드'에 그쳤던 레슬링의 자존심도 살렸다.

지난해 75㎏으로 체급을 올린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 연속해서 정상에 올랐다. 국제시합에서도 무패 행진을 벌여갔다. 그런 김현우에게 아시안게임은 마지막 관문이나 다름없었다. 아시안게임 정상에 오르게 되면 박장순(46) 국가대표 자유형 감독과 심권호(42) 대한레슬링협회 이사의 뒤를 이어 역대 세 번째 레슬링 그랜드슬래머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현우는 시종일관 여유있었다. 목이 탔는지 물을 찾기도 했고, 2년 전보다 훨씬 깨끗한 얼굴에 대해 "임팩트가 없어서 얼굴에 뭐라도 그려야 할 것 같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 국민들에게도 감사하다. 훈련이 정말 힘들었지만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버텼다"고 했다. 그는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질문에는 "그동안 새벽 훈련을 하느라 힘들었다. 일주일 정도 집에서 푹 자고 싶다"고 웃었다. 이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절을 했다.

그랜드슬램은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김현우는 "올림픽 금메달이 꿈이라 그 이상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레슬링계는 아직 젊은 김현우에게 올림픽 2체급 제패란 꿈을 걸고 있다. 김현우는 "앞으로도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 나는 아직 젊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겠다"며 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기약했다.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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