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酒車’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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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순경이 음주운전자를 잡기 위해 술집 주차장에 잠복한다. 잠시 뒤 한 청년이 술집에서 나와 비틀거리다 결국 자기 차를 찾아 들어간다. 청년이 운전석에 앉아 계속 고함을 지르는 동안 순경은 음주운전 식별표를 꺼내 본다.

'갈팡질팡 걷기 음주확률 45%, 차내 소란 음주확률 55%…. ' 순경은 청년이 만취했다고 판단, 그가 운전하기만 기다린다. 그 사이 다른 손님들은 술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사라진다.

주차장이 텅 빌 무렵 청년이 차를 몰고 나오려 하자 순경이 달려들어 음주측정을 한다. 그러나 측정기에 나타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 당황하는 순경에게 청년이 던진 한 마디. "다른 취객들을 위해 경찰 유인 아르바이트 좀 했습니다. "

미국 인터넷에 나오는 유머다. 한국이라면 이런 우스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 도로를 막고 '음주운전 일제 단속' 간판을 세워놓은 뒤 술집 손님들을 모두 검문했을 테니까….

음주차량 단속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외관 탐지법. 1983년 미국의 행동과학자들은 운전자의 행동을 분석, 23개 형태별로 음주확률을 계산한 '음주운전 탐지 가이드'를 만들어낸다.

차를 자주 세우면 음주확률 70%, 앞 차에 바짝 붙어가면 60% 등…. 경관은 이 가이드를 참고로 의심 차량만 가려내 선별 검문한다.

다음은 큰길을 막고 차량을 검문하면서 아무에게나 음주측정기를 들이대는 무작위(일제) 단속. 시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전제한 것이어서 선진국에선 잘 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상 운전자는 음주운전자보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는다는 점에 착안한 전자센서 탐지법. 도로 바닥에 센서를 깔아놓고 인공 턱을 넘을 때 보이는 브레이크 조작 움직임을 감지해 의심 차량을 찾아내는 첨단방식이다.

며칠 전 경찰청이 일제 단속을 선별 단속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탐지 가이드를 일선 서에 배포했다. 음주운전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오랜만에 보는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정책이다.

정책이나 정부는 종종 운전행태에 비유된다. 지난 정권 때 한 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정부는 난폭운전, 노태우 정부는 초보운전, 김영삼 정부는 무면허 운전, 김대중 정부는 음주운전이다. " 하지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초보 음주운전 일 게다.

이규연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