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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모르던 강남 성형외과·피부과 손님 '뚝'… "봄날은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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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 의원. 텅 빈 병원에서 간호사 두명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간호사(28)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면서 "지난주 초 쌍꺼풀 수술을 3건 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의 2001년 1분기(1~3월) 매출액은 1억3천여만원.

그러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6천여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개업 4년째인 이 의원 원장(36)은 "임대료.간호사 월급.재료비 등 한달 유지비가 2천만원 정도 드는데 지난 2,3월에는 매출액이 1천만원을 간신히 넘었다"고 말했다.

불황을 모르던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들의 요즘 모습이다. 성형외과뿐 아니라 치과.피부과.안과 등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진료가 많은 '비보험' 병.의원과 보약 조제로 활황을 누리던 한의원들이 경기 침체로 휘청거리고 있다.

◆급감하는 환자=개업의들은 "지난해 말부터 불경기가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불황으로 시민들이 성형.보철.라식수술 등 당장 시급하지 않은 진료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서울 명동에서 안과를 운영 중인 이병로(42)씨는 "지난달부터 라식수술 건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의 한 치과 원장(36)은 "호황이던 2001년에 비해 매출과 순익이 모두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한의원쪽은 사정이 더 어렵다. 주 수입원인 보약 매출이 크게 줄어든 탓에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힘들다"고 한다.

한의사 崔모(여.40)씨는 이달 초 과천에서 6년째 운영해 오던 한의원 문을 닫고 선배가 운영하는 한의원에 고용 의사로 들어갔다.

서울 강남구 백상한의원 염종훈(41)원장은 "원래 봄철은 보약 시즌인데도 약 지으러 오는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고 매출은 예년의 절반도 안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는 매물로 나온 의원들이 쌓이고 있다. 한 성형 전문의(59)는 올해 초 은퇴를 결심하고 서울 압구정동 병원을 매물로 내놓았다.

병원 입지가 좋아 거액의 권리금까지 받고 팔 수 있을 걸로 기대했지만 권리금은커녕 사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다. 개원 전문 컨설팅회사 대표 정영진(44)씨는 "성형외과.피부과 등 12건의 매물을 맡았는데 거래가 안된다"고 했다.

◆살아남기 노력 한창=지속적인 매출 신장에만 익숙해 있던 비보험 병.의원들이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 유명 피부클리닉은 2001년 기존 강남역점 근처에 분원을 냈다가 최근 분원 직원을 20명에서 6명으로, 의사를 4명에서 2명으로 줄이는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라식수술 전문인 강남역 부근 B안과는 최근 일반 환자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일부 의원은 '덤핑(수술비 인하)'으로 활로를 모색하기도 한다. 요즘 피부과에서 가장 인기있다는 제모 시술비도 3백만원에서 1백만원으로 떨어졌다.

2주 전 M성형외과는 코 높이는 수술비를 1백2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내렸다. 한 피부과 개업의는 "시술용 레이저 한대가 1억8천만원인데 제살 깎기 경쟁으로 수지가 안맞는다"고 걱정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불경기 외에 2000년 이후 성형.피부 진료가 공급 과잉이 된 탓도 있다"며 "환자들이 지갑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재.천인성.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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