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 칼 대지 않고 머리띠형 기기로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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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 내 손에 있는데, 연구논문만 쓰고 있을 순 없죠.”

 머리띠형 치매 치료기기를 개발 중인 윤경식(29·사진) 와이브레인(Ybrain) 대표가 창업을 선언하자 주변에선 “곧 대학교수 될 텐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 미쳤다”며 만류했다. 게다가 그가 하려는 일은 ‘하드웨어 제조형’ 사업.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매달리는 대다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과 달리 실패하면 잃을 게 많은 분야다.

 하지만 윤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카이스트(KAIST) 동창생인 친구들과 와이브레인을 세웠다. ‘뇌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지 않고도 치매를 치료할 웨어러블(입는) 기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원이었던 윤 대표가 뇌질환 치료에 필요한 뇌 신경망 지도를 밝혀낸 직후였다.

 윤 대표는 “제가 개발한 뇌 신경 조절기술을 활용하면 머리띠같은 전기밴드만 쓰고도 치매를 치료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뇌에 전기자극을 주면 뇌 기능을 향상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기존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두개골을 여는 수술을 통해 뇌에 직접 전기 막대를 꽂아야만 한다. 이 때문에 중증 환자가 아니면 전기치료를 시도하기 힘들었다.

 윤 대표의 기술로는 두개골 바깥에서 흘려보낸 전류가 특정 신경망을 타고 뇌의 가장 깊숙한 지점까지 흘러 들어간다.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받은 윤 대표의 연구결과는 지난해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지가 발행하는 정신의학전문저널에 소개됐다. 와이브레인은 지난 6월 이 기술을 적용한 첫 시제품 ‘Y밴드’를 개발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3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식약처 허가를 받으면 내년 하반기엔 상업용 제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도 여느 카이스트 졸업생들과 비슷한 ‘엄친아’였다. 과학고를 2년만에 조기 졸업하고 KAIST에 입학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간의 뇌에 눈을 떴다.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미래산업을 창업한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 덕분이었다. 2001년 이 학교에 300억원을 기부한 정씨의 뜻에 따라 KAIST는 세계 최초로 바이오뇌공학과를 개설했다. ‘정문술 1세대’인 윤 대표는 이 학과의 첫 졸업생이 됐다. 윤 대표는 연구개발 분야을 치매를 시작으로 다른 뇌 질환들로 넓혀갈 예정이다.

 와이브레인은 올해 초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핵심연구소인 제트추진연구소(JPL)와 공동연구도 시작했다. 지진파를 비롯해 각종 신호를 연구·분석하는 JPL이 와이브레인의 뇌파 진단·치료 기술을 눈여겨 봤다. 두 기술이 결합하면 뇌파를 더 정확히 분석해 치매 진단을 더 빨리 할 수 있게 된다. 윤 대표는 NASA와의 공동연구 등 지금까지의 성과를 29일 열리는 네이버 개발자대회(DEVIEW 2014)에서 발표한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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