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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DNA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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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간의 정자를 최초로 관찰하고 기록한 사람은 네덜란드인 안토니 반 레벤후크(1632~1723)였다. 그는 1677년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정액을 들여다본 후 "천개도 넘는 극히 작은 동물들이 깨알만 한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레벤후크는 개.토끼.다람쥐 등 갖가지 동물의 정자를 관찰했다. 그러나 초기 형태의 현미경이라 연구 결과에 오류가 많았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관찰로 입증됐다며 "태아를 만드는 것은 남성의 씨앗뿐이다. 여성은 씨앗을 받아 키우는 일만 한다"고 우긴 인물이었다.

레벤후크의 바로 앞세대이자 근대과학 방법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남성 우월주의를 보다 확실히 드러냈다. 베이컨에게 자연은 '수동적이고 때로 완고한 여성'이었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 보다 정확히는 '남성'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은 마녀와 같아서 수시로 고문하고 겁탈해야 비밀을 토해낸다"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이런 자연관 앞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디딜 땅은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이나 흑인, 그리고 여성들은 워낙 사회적 차별에 길들어 있어서 정당한 대접을 받겠다는 욕심도 별로 없습니다. 나는 여권 운동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처럼 차별의 장벽이 무너지는 사건을 접할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격에 목이 멥니다."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 등에 관한 탁월한 업적으로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여성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이 미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으로 선발된 후 동료 학자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다. 그나마 매클린톡은 장수했기에 81세 늦깎이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제임스 웟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지 오늘로 꼭 50년이 된다. 이 기념비적 발표의 배경에는 로잘린드 프랭클린(1920~58)이라는 뛰어난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

프랭클린이 촬영한 선명한 DNA X선 회절(回折) 사진들은 웟슨과 크릭의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불행히도 그녀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숨져 노벨상과의 인연도 끊어지고 말았다.

한국의 여성 과학자들의 현주소는 어떨까. 아마 학창시절부터 유.무형의 차별과 싸워왔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풍토가 아주 달라지진 않은 듯싶다.

노재현 국제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