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방재청, 1조원 '예산 폭탄'에 즐거운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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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방재청(청장 남상호)이 말 그대로 '예산 폭탄'을 맞았다.

소방청은 당초 기획재정부에 내년도 예산으로 8692억원을 신청했다. 올해 예산(8725억원)보다 적은 규모였다. 소방청 당국자는 "기재부가 중기재정계획을 이유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예산을 줄여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차례의 예산 협의를 벌이는 과정에서 기재부가 1조757억원을 소방청에 편성해주기로 한 것이다. 올해보다 2032억원(23.3%)이 늘었다. 2004년 소방청이 독립 조직으로 출범한 이후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소방청 고위 당국자들은 입이 떡 벌어질 상황이었다.

남상호 소방청장은 24일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자청해 "국민안전예산 증액은 세월호 사고 이후 높아진 국민의 안전욕구를 충족시키고 국민 안전복지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세월호 사고가 예산 1조원 돌파의 숨은 요인이란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남 청장은 "안전이 복지이자 투자라는 시각의 전환과 함께 세월호와 같은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재난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현안 과제 등 투자 우선 순위에 의한 효율적인 예산 편성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예산이 늘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뉘앙스였다.

소방청 예산이 단기간에 폭증하면서 세월호 와중에 드러난 황당한 비정상 사례는 어느 정도 정상화가 가능해졌다고 소방청은 판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예산이 부족해 일선 소방관들이 자기 돈으로 안전 장비를 사는 일이 이번 예산 증액으로 당분간 사라질 것으로 소방청은 전망했다.개인안전장비 구입에 255억원이 내년에 편성되기 때문이다.

노후 소방장비 보강 지원을 위해 국비 1000억원이 편성된 것도 가뭄속 단비로 소방청은 받아들인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 산하 해경들이 인명 구조를 제대로 못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참사를 겪으면서 거국적으로 안전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고 안전 예산을 확충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세월호 참사 논란 와중에 비록 소방청이 신설 10년 만에 느닷없이 해체되고 신설되는 국가안전처으로 흡수될 예정이지만 소방청은 예산 갈증을 어느 정도 푸는 뜻밖의 부수 효과를 거둔 셈이 됐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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