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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절단 수술 환자도 런웨이서 캣워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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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29면

‘모델 같다’는 말은 신체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가느다랗고 기다란 팔·다리, ‘손바닥만 한’ 얼굴, 젓가락처럼 군살이 없는 몸을 한 마디로 정리해 준다. 그리고 그 9등신의 몸이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적때기를 걸쳐도 멋스러울 수 있는 마법의 효과를 지닌다. 패션쇼가 관객을 순식간에 압도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모델의 비현실적인 체형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스타일# : 비정상 모델론

최근 끝난 뉴욕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 캐리 해머(Carrie Hammer)의 쇼는 그래서 남달랐다. 손쉬운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정식 모델 대신 일반인을 런웨이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장애인도 있었다. 어릴 적 세균성 수막염에 감염돼 사지절단 수술을 받은 카렌 크레스포가 그 주인공이었다. 빨간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그는 의수·의족을 끼고 당당하게 캣워크했다. 이례적 패션쇼에 대해 카메라 플래시가 폭죽처럼 터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해머가 ‘모델 혁명’을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 시즌 뉴욕패션위크에서도 모델 전원을 일반인으로 뽑았다. CEO, 미스 USA 입상자, TV 프로 진행자 등이 무대에 올랐다. 그 중 한 명은 휠체어를 탔다. 두 살 때부터 하반신 장애로 살아온 의학심리학자 다니엘 시푸크였다.

이색 모델을 기용한 이유를 해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신체변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자신의 외모가 기형이고 장애가 있다고 뇌에서 신호를 내리는 정신질환)와 늘 싸우곤 한다. 그것은 늘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일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런웨이 모델이 아닌 ‘롤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해머가 장애인으로 모델의 정상과 비정상의 벽을 무너뜨렸다면 이전의 몇몇 광고들은 모델의 나이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2012년 등장한 ‘어드밴스드 모델’이 그것이다. 캐주얼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은 시니어 모델을 발탁하고 이들을 위한 별도 라인을 만들었다. 지면 광고에는 반바지에 피케 셔츠, 긴 머리를 한 백발 여성을 등장시켰다. 패션하우스 랑방도 화보 모델로 우아한 할머니를 발탁했다. 단아한 투피스를 입고 매무새를 가지런히 한 채 연륜이 담긴 중후함을 드러냈다.

장애인이나 노인 모델이 때마다 화제가 되는 건 그들이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면 무엇이 진짜 비정상인가 싶다. 모델이란 직역하면 ‘본보기’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수많은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돼 주고 있을까. 몸이 불편한 여자도 나이 든 여자도 옷을 사지만 176cm에 50㎏을 밑도는 44사이즈의 젊은 언니들을 따라하기란 쉽지 않다. 무리한 다이어트나 미용 시술을 결심하는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자신이 입었을 때 어떨 것인가에 대한 감이 도무지 안 생긴다. 참고할 만한 스타일링도 찾지 못 한다. 기럭지 우월한 모델의 와이드 팬츠를 보고 다리 짧은 동양 여자가 어떤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을까. 옷의 구매자 입장에서라면 그들이야말로 ‘비정상 모델’인 셈이다.

비정상 모델의 등장은 익숙한 것이 곧 정상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알려준다. 오히려 나와 비슷한 여인들이 입을 땐 저런 태가 나겠구나, 보통의 현실적 몸매에선 스타일링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라는 진짜 ‘모델’이 된다. 하여 그들을 말하자면 어느 가요의 패러디가 딱이다.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라고.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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