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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정치ㆍ사회와 융합돼야 유용해진다

중앙일보

입력

세상의 어떤 학자들이 자기 학문이 쓸모가 있는지 토론을 할까. 8월 20~23일 독일 린다우에서 열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의 결산토론 주제는 ‘경제학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유용한가(How Useful Is Economics - How Is Economics Useful?)’였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유럽의 한복판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은 왜 자신들이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지, 심지어 위기를 악화시키는 처방을 내놓게 됐는지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자기 정당화로 비친 대목도 종종 있었다. “일반인과 경제학자는 현실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거나 “경제학은 수학ㆍ물리학에 비해 젊은 학문이어서 정교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이 그것들이다.

토론의 주제 자체도 경제학이 유용하다는 것을 전제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더 유용할 수 있는지를 논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제학자가 이론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로버트 머튼)”는 주장에 이르러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머튼(1997년 수상자)·다이아몬드(2010년)·로스(2012년) 교수가 함께 한 결산토론엔 노벨상 종주국 스웨덴의 실비아 왕비도 참석했다. 사회는 노벨경제학상 심사위원인 토르스텐 페르손 스톡홀름대 교수가 봤다. 토론 내용을 Q&ampamp;A 형식으로 정리했다.

-경제학자의 예측은 왜 정확하지 않은가.
“경제학자들은 정책 제안도 하지만 그 정책이 아닌 다른 정책을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를 상정해 보는 반사실적 추론(counterfactual)도 한다. 물론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반사실적 추론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확대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못 살렸으면 국민 대다수는 그냥 실패했다고 보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재정확대가 실업률을 낮추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이론과 룰을 가지고 당면한 현안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일반인이 현실을 잘 모른다는 건가.
“경제 교육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피터 다이아몬드)는 1974년부터 미국 정부에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자문해 왔다. 좀 전문성이 있는 편이다. 여러 가지 연금제도를 논의하다 개인연금계좌 얘기가 나왔는데 조사를 해보니 미국인의 50% 이상이 주식과 채권의 차이를 모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되면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는 고사하고 신용 리스크나 파생상품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언제, 어떻게 유용한가.
“‘경제학’이라고 뭉뚱그려선 정답이 없다. 정부 안에 있는 경제학자도 있고 바깥에 있는 경제학자도 있다. 또 물리학엔 민주당 물리학, 공화당 물리학이 없지만 민주당에 기운 경제학, 공화당에 기운 경제학이 사실상 존재한다. 정부 측 경제학자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고, 바깥에 있는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비판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한다. 또 미국 정부, 스웨덴 정부, 칠레 정부의 경제학자들이 각각 연금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 지도 다르다. 한 나라에서 환영받는 제도가 다른 나라에선 비난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 모인 젊은 경제학자들도 우리처럼 늙은 경제학자들과 의견이 다를 것이다. 경제학은 이런 다양한 경제학자들 간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때 유용하다고 본다.”

-예전에 비해 경제학의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모형(model)으로 얘기한다. 복잡한 현실을 간단하게 정리한 게 모형인데 경제학자들은 가끔 모형이 추상적(abstraction)이란 사실을 잊어버린다. 예전에 비해 데이터 수집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완벽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 어찌됐든 경제학자들은 ‘만약 이걸 얻으려면, 다른 건 희생하고’ 식의 트레이드 오프(trade-off)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옛날 트루먼 대통령이 하도 경제학자들이 ‘한편으론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고(on the one hand, on the other hand)’하며 자문을 하니까 “팔이 한쪽만 있는 경제학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제대로 된 경제학자라면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득실을 나눠 조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최종 결정은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가 하도록 해야 한다.”

-바로 그 현실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는데 이론과 가설만 읊조리니까 욕을 먹는 것 아닌가.
“역시 트레이드 오프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학이 기여한 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제학의 발전은 혜택도 많이 가져왔지만 문제도 일으켰다. 주로 경제학의 발전을 잘못 사용해서 벌어진 문제들이다. 혜택과 문제 요소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찾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속 120㎞로 달리는 기차를 개발해 놓고 19세기 철로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경제학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ㆍ사회 분야와 융합이 중요하다고 본다. 장 클로드 융커 신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우리는 모두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저 그걸 한 다음에 어떻게 재선에 성공할지 모를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두 명제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정책입안자들이 너무 많다. 긴축정책이 해롭다는 게 여러 해, 여러 나라에서 증명됐는데도 계속해서 긴축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한 예다. 재선과 관련해선 정치인들이 보다 솔직하고 사명감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여론을 바꿔야 한다. 그게 정치의 과정이고 그 속에 경제학자의 역할도 있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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