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배 뒤집힌다 … '바다 위 지뢰' 예인선 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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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16일 오전 1시 35분 경남 거제시 능포동 양지암에서 2.5㎞ 떨어진 해상에서 장승포 선적 4.9t급 장어통발 어선 장수호가 예인선 줄에 걸려 뒤집혔다. 이 사고로 선장 이모(43)씨 등 선원 3명이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됐다. 지난달 12일 오후 4시 30분에는 경남 거제시 다대항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바다에서 59t급 꽃게잡이 통발어선 벌하호가 또 다른 예인선과 충돌해 전복했다. 애초 해경은 충돌 전 통발어선이 예인 줄에 걸린 것으로 추정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11명 가운데 선장 허모(51)씨 등 6명이 숨지고, 선원 박모(42)씨 등 5명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비슷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 해사안전법은 국내 연근해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한 관리체계를 확립하고 예상되는 위험과 장애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이 법은 앞의 두 사례처럼 예인선과 부선을 연결하는 긴 쇠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선박이 그 사이를 통과하다 발생하는 예인선 사고의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 예인선 운항시 갖춰야 할 안전시설물을 정해놓은 관련법이 선체에 대한 표지의무만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법에 따르면 예인선만 운항할 경우 운항 표시등을 1개 설치해야 한다. 또 끌고 가는 배(부선)가 있을 경우 2개, 부선과의 거리가 200m를 넘을 경우 운항 표시등 3개를 설치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어디에 운항표시등을 달아야 한다는 위치규정은 없다. 물론 사고의 원인이 되는 줄에 표식을 해야한다는 규정도 없다.

 예인선과 부선의 거리는 보통 150~200m이다. 두 선박을 연결하는 쇠줄은 팽팽히 당겨지는 경우가 있지만 느슨하게 처지거나 아예 수면 아래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민들이 아무런 표식이 없는 줄의 존재를 해상에서 육안으로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밤이나 해무·폭우 등으로 가시거리가 짧아지면 꼼짝없이 예인 줄에 걸리기 쉽다는 게 어민들의 얘기다.

해상안전 전문가들이 위험한지 여부를 다른 선박이 알 수 있게 줄에 부표를 다는 것을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예인선 운항 자격요건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됐다. 현재 선장은 선박 규모에 맞는 등급의 해기사면허를 소지하면 예인선을 몰 수 있다. 국내 연안에서 보통 1000t 미만의 예인선을 5~6급 항해사가 운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육상 견인차의 경우 일반 면허 외에 특수면허가 추가로 필요하듯 해상에서도 예인선 규모에 따라 운항 자격요건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길영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부 교수는 “눈에 잘 띄는 형광·야광이 가능한 예인 줄을 사용하고 20~30m 간격으로 표식을 달도록 하며 선장 자격요건을 강화해야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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