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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베를린의 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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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난 베를린에 가방을 하나 두고 왔지/그래서 곧 그리 가야 해/지난날 행복은/모두 가방 속에 있다네… 파리 마들렌 거리는 눈부시게 아름답고/5월 로마 시내를 걷는 것도 아름답지/여름밤 빈에서 조용히 마시는 와인도 좋지만/그대들이 웃을 때/난 오늘도 베를린을 생각한다네/베를린에 가방을 하나 두고 왔기 때문이지."

1992년 사망한 독일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가 부른 유행가의 가사다. 그녀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엔 고향 베를린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 난다. 이제 독일어로 어딘가 가방을 두었다면 그곳에 가고 싶다는 뜻이 된다.

'20세기 독일 최고의 여배우'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디트리히. 시오노 나나미가 좋아하는 유일한 여배우라지만 그녀만큼 독일인의 애증을 한 몸에 받은 사람도 없다.

30년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 감독의 '푸른 천사'로 데뷔한 그녀는 중성적이면서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됐다.

그해 미국으로 건너가 39년 미국 시민이 된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의 미군 위문공연에 참가했다. 그 공로로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 '자유의 메달'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게 그녀에겐 불행의 시작이었다. 60년 유럽 순회공연 때 꿈에도 그리던 조국을 방문한 그녀는 '배신자'란 소리를 들었다. 이후 그녀는 영원히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파리에 살면서 고향이 생각날 땐 흐느끼듯 '베를린의 가방'을 불렀다. 감히 만해(卍海)식 표현을 빌리자면 '중생이 석가의 님이고 철학이 칸트의 님이듯' 베를린은 디트리히의 님이었다.

91세에 자살한 그녀는 베를린으로 운구돼 어머니 묘 옆에 묻혔다. 결국 60여년 전 남겨 놓은 가방은 영영 찾지 못한 셈이다. 그녀의 죽음에도 독일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97년 베를린의 한 광장에 그녀 이름이 헌정되면서 비로소 디트리히는 '독일 최고의 여배우'로 부활했다.

엊그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청와대 방문에 말들이 많다. 순수 병문안이라지만 모양새부터 어색했다. 보궐선거에다 대북송금 의혹사건 수사가 막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는 느낌이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李下不整冠)'는 옛말이 떠오른다.

혹시 DJ도 청와대에 가방을 남겨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 DJ 마음속에 가방을 두었을까.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