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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호인가 군더더기 없는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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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군사독재로 암울했던 60년대 홀연히 나타나 고혹적인 목소리로 삶에 지친 이 땅의 사람들을 위무하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가객-. 대충 이 정도면 웬만한 이들은 단박에 그가 바로 '돌아가는 삼각지''누가 울어''안개 낀 장충단 공원''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 등의 명곡을 남긴 배호를 떠올린다. 일제 때인 1942년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서 태어난 그가 가수로 데뷔한 건 만 21살이던 1963년. 그리고 1971년 11월7일 지병인 신장염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그야말로 불꽃같은 인생이었다. 그가 살았던 전 생애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를 오롯이 되살려낸 평전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있어 그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사실 그는 갔어도 가수 배호는 여전히 살아있다. 노래방이나 여럿이 모여 즐기는 여흥 자리엘 가보라. 배호의 노래가 한 두곡쯤 나오지 않는 곳이 있던가. 그가 현역 시절에 함께 살았던 세대만의 얘기가 아니다. 의심스러우면 배호 홈페이지(baeho.com)를 들어가보면 알 일이다. 평전에 소개된 글을 하나 소개하면 이렇다. "저도 10대의 한 학생으로 지금의 노래도 좋아하지만 배호 선생님의 노래도 좋아해요. 배호님의 노래를 어머니와 같이 듣는답니다. 배호님은 너무 노래를 잘 부르시는 것 같아요."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팬을 넘어선다. 어찌보면 '배호교 신도'들 같다. 아마 이런 것들이 가수로서는 처음일 법한 평전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저자는 소설 '애니깽''역도산'등의 작품을 쓴 작가이자 문화 평론가. 배호와 관련된 자료는 물론 관련자들을 일일이 찾아 인터뷰한 솜씨가 대단하다. '건방지게 멋있는 배호이야기''영혼으로 노래한 민족가수 배호''배호는 살아있다'등 3부로 나누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도 탄탄하다.

필시 배호를 상당히(?) 좋아하겠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입증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나름대로 배호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보면 그에 대한 그리움이 새로워질 것이고, 배호를 잘 몰랐던 사람이라면 '왜 배호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에 충분하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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