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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문대학의 한국학생들 (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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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이델베르크….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도시다. 옛 정취를 더듬어 구 시가지를 거닐고있는 관광객들에게도 하이델베르크는 역시 아름답다.
그러나 요즈음의 하이델베르크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곳에 상당기간 머무르는 사람들, 특히 한국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신과학의 선구대학>
5백85년전부터 독일최고의 대학이 자리잡은 하이델베르크는 관광·대학도시라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다. 외곽이긴 하지만 30년 넘게 NATO의 중부유럽사령부 겸 주독미군사령부가 위치한 군사도시로서 2만여명의 미국인들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상당히 변형시켜 놓고 있다.
이 같은 도시의 변모처럼 대학도 전설 같은 예전의 그런 얼굴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대학 (Universitalt Heidelberg Grabensgassel, 69 Heidelberg W.Germany)은 2만6천명에 가까운 학생에 교수 5백25명, 강사와 조교1천여명이 붐비는 규모로 급격히 팽창하면서 인력이나 시설면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대학의 변모는 그러나 외향적인데 보다는 내면적인데서도 두드러지게 엿보인다.
「프리드리히·헤겔」 「막스·베버」 「칼·야스퍼스」등이 강단을 거쳐가며 최근까지 전통적으로 독일정신과 학의 선두그룹에 서오던 하이델베르크가 7O년대초까지 한동안 활발했던 과격학생들의 활동을 고비로 『이제는 자연과학계열의 학문이 우세해지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고 10년 가까이 이곳에 머무르고있는 윤형수씨(40·독문학)는 말하고 있다.
신학·법학·의학·철학·경제학·자연과학 등 8개학부(단과대학)로 이루어진 하이델베르 크대학에 등록된 한국학생은 50명. 독문학전공이 6명, 경제학5명, 사회학3명 등이 많은 편이며 그외에는 여러 학과에 골고루 분포돼있다.
이밖에 학부에는 등록돼 있지 않지만 전공에 들어가기 전 언어습득을 위해 대학부실 인터내셔널 스터디 센터에 다니는 유학초년생이 35명으로 한국학생은 모두 85명에 이르고 있다.

<독일어 교육기관 인기>
대학학부의 경우 독일에 온 한국학생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경험이지만 하이델베르크에서도 역시 어학코스로 2년정도 보내는 것이 통례로 돼있다.
6년째 머무르며 이제 박사과정을 준비중에 있는 유명훈씨(34·경제학)는 『어학코스를 마치고서도 디플롬(이과)이나 마기스터(문과)를 끝내는데 애먹었다』고 말하며 『독일의 디플롬이나 마기스터는 형식상 한국의 학사학위와 비교되지만 학문적인 깊이 면에서는 석사학위에 못지 않다』고 했다.
대학원제도가 없는 독일의 학계에서는 디플롬이나 마기스터를 끝내면 곧바로 박사를 목표로 공부할 수 있지만 한국학생이 석사학위를 가졌다고 해서 곧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지도교수가 결정되고 나면 일단 학문적인 능력테스트를 받아야하는데 암기식, 이론적으로만 배워온 바탕으로는 그 관문을 뚫기가 쉽지 않다고 유씨는 말하고있다.
교수의 강의위주 교육이 아니라 학생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주제를 연구하여 강의실에서 발표하면 교수 조교 학생 모두가 수긍할 때까지 토론을 벌여 체득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이린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한국학생들은 처음에는 독일학생들이 이런 「몸에 밴」 학문적 깊이를 따를 수 없다는 얘기다.
『포괄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들, 상식적인 화제가 나오면 독일학생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한국학생들이 많이 알고있지만 일단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전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그저 훌쩍훌쩍 뛰어 넘어 공부한 것처럼 느꼈다는 유씨도 그래서 『6년이 지난 이제서야 박사과정을 준비할 자신이 붙는 것 같다』고 말하고있다.

<책값 비싸 사기 어려워>
기본생계비는 싼 편인데 종이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비싼 독일에서 책 한권 사려면 몇주일이고 별러야 사는 형편들이다.
1백인∼2백마르크(약4만5천∼6만원)의 기숙사비를 포함해 한달 평균7백∼8백마르크(약 21만∼24만원)면 공부할 수 있지만 새로 오는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나 방 얻기가 어려워 6∼7개월 가량 떠돌이 생활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기숙사가 아닌 셋방도 2백∼3백마르크 (약6만∼9만원) 로 비싼 편은 아니지만 처음 오는 학생들에게는 방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의 누구나 한번씩은 겪는 일이지만 인종적인 이유로 거절당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어가며 하이델베르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80년말 현재 20명에 이른다.
서울대문리대철학교수를 지낸 후 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조가경씨, 안병무 전한국신학대학장(철학), 심윤종 (성대·철학) 오광우(성대·경제학) 김영한 (숭전대·철학) 한일섭 (서강대·독문학) 이형환 (연대·법학) 교수 등이 하이델베르크 출신.
신룡철 (경희대·철학) 이광숙 (서울대사대·독문학)씨는 하이델베르크대출신의 부부박사다.

<하이델베르크 (서독)="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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