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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끼리 고3처럼 경쟁, 취업률도 낮아 남녀공학 '쏠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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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졸업식을 마친 여대생들이 우산을 쓰고 걷고 있다. 한국의 여대들은 요즘 인기 하락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초 삼성그룹이 대학총장 추천에 의한 신입사원 모집 계획을 발표하자 여대들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대학별 배정 인원은 이화여대 30명, 숙명여대 20명, 성신·서울여대 15명, 동덕여대 13명, 덕성여대 10명, 광주여대 6명이었다. 이화여대에 할당된 인원은 숭실대·단국대와, 덕성여대 배정 인원은 강남대·호남대와 같았다. 삼성은 기존 신입 공채에서의 선발 비율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여대 졸업자의 삼성 취업이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달 말 덕성여대는 교육부로부터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 지정을 받았다. 이 조치를 당한 9곳의 4년제 대학 중 유일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다. 서울에 있는 다른 두 여대도 같은 판정을 받을 처지에 놓였으나 정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약속하며 위기를 넘겼다. 서울에 있는 6곳의 4년제 여대 중 절반이 사실상 ‘부실’ 진단을 받은 셈이다. 한국의 4년제 여대는 서울의 6개 대학에다 광주여대를 합해 모두 7개다.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평가에서 여대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배경 중 하나는 저조한 취업률이다. 광주여대를 제외한 6개 대학의 졸업생 취업률은 모두 40%대다. 전국 대학 평균 58.6%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여대들은 취업이 잘되는 공대가 없는 데다(이화여대에만 공대가 있다.) 취업보다는 다른 분야의 진출이 많은 예·체능계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아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저런 사정을 다 감안해도 여대의 취업률이 저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학평가에서 고전하는 명문 여대들
여대가 위기다. 중앙일보가 매년 실시하는 대학평가의 결과를 보면 한국 여대의 대표 격인 이화여대·숙명여대도 고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숙명여대의 경우 종합순위에서 10여 년간 20위 안팎을 오르내렸으나 지난해에는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사회적 진출 성과와 평판을 측정하는 평판도 조사에서 이화여대는 지난해 20위로 떨어졌다. 2006년에는 10위였다.

 대학 관계자들은 취업난과 점점 커가는 여학생들의 남녀공학 선호 성향이 여대가 위축되고 있는 주요 이유라고 분석한다. 박천일 숙명여대 대외협력처장은 “대졸자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그나마 취업이 활발한 이공계로 진학하려는 여학생들이 늘었다. 그런 면에서 여대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학생들이 여대를 기피하는 현상도 번지고 있다. 입시학원 메가스터디의 남윤곤 입시분석팀장은 “여학생끼리만 공부하는 것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 부모는 여대에 가는 것을 원하지만 입시생 자신은 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고교 3학년이 되면 성적에 맞춰 여대를 가려고 하는 학생들이 생겨나지만 1, 2학년 때 여대를 목표로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상담 경험을 전했다.

일본 빼곤 여자대학 위상 대부분 하락
여학생들은 도대체 왜 여대를 피하려 하는 것일까. 재수생 박모(21·여)씨는 “여대생들끼리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성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얘기를 듣고 여대 지원을 망설이게 됐다. 대학 생활이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학생 한지혜(23·교육학과)씨는 “내 주변에도 여대에 들어간 뒤 재수를 하기 위해 휴학하거나 편입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학점 경쟁은 심하고 동아리 활동이나 학회 활동은 활발하지 못하다는 현실에 실망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고 했다.

 여대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일부 여대에서는 수능 성적 중에서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이 취약한 수리탐구 점수를 내지 않아도 되는 대입 전형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을 유인하는 방법이다. D여대의 한 보직 교수는 이에 대해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여대로 간다는 인식을 심어 줘 공부 잘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여대를 기피하게 만드는 근시안적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여대의 위축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한 세기 만에 약 300개에서 50개 정도로 여대 수가 줄었다. 대부분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대학과 합병됐다. 대학이 늘어나고 있는 중국에서도 여대는 3개뿐이다. 전 세계에서 여대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곳은 일본 정도다. 일본에는 49개(전문대 9개 포함)의 여대가 있다.

공대 만들고 대학원엔 남학생 입학 허용
여대들의 고민이 깊어가면서 다양한 현실 타개책도 등장하고 있다. 1996년 4개의 과로 공대를 신설한 이화여대는 이공계 분야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이 대학의 유성진 홍보부처장은 “신소재공학과 식품공학 등 여성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숙명여대는 이르면 2016년부터 공대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이 학교는 일반대학원에 남학생을 받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덕성여대 등 일부 여대는 이미 대학원 과정에서 남학생을 받고 있다. 성신여대는 여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미디어 관련 분야를 특성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부 여대는 남녀공학으로의 전환도 고려중이다. 성신여대는 4년 전 공학으로의 변신을 꾀하다 동문들의 반발로 유보했다.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이대와 숙대를 제외한 다른 여대들은 사실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96년에 남녀공학으로 바뀐 상명대(옛 상명여대) 관계자는 “공학으로 바꾸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당시 동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설득했다. 화장실 등 시설 개조에도 큰 돈이 든다. 재정적 뒷받침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고 말했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여대들이 특성화 등을 내세워 여학생들의 지원 기피 현상을 극복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상언 기자, 강승한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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