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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음식, 편안한 수다

중앙일보

입력

동네마다 골목마다 레스토랑&#183;카페&#183;베이커리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콕 짚어 '거기' 간다. 그 순간에, 그 상황에, 그 사람들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니까. 결국 '거기'란 맛으로만 재단될 수 없는, 최대한의 만족도를 이끌어 내야하는 고차원 방정식의 답이다. 하여 '거기'는 '어디서 만날까'라는 간단하고도 까다로운 문제를 풀어보려는 작은 시도다. <편집자 주>

둘만 따로 약속 잡고 만날 땐 특히나 장소의 힘이 크다. 오래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편안한 자리, 먹기에 번잡스럽지 않은 음식, 뭣보다 대화가 끊기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서울 한남동 '윤세영 식당'은 그런 만남에 어울리는 공간이다.

디자이너 A와도 둘만 종종 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이유 불문하고 &quot;윤세영 식당으로 오라&quot;고 했다. 최근 사무실을 이 동네로 옮긴 A의 새 아지트였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줄 뒤늦게 알았지만 당시엔 '김순자 꼼장어'나 '김옥순 할매찜닭'과 묘하게 비슷한 친근감이 있었다.

식당은 한남동 주택가 골목에 있다. 그 한적한 분위기가 지척에 있는 한남오거리 골목이나 가로수길&#183;홍대앞과는 딴판이었다. 테라스 테이블에서 앉아 있던 그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줬다. 자신의 집을 제대로 찾아온 친구를 맞는 표정으로. 배경도 그럴듯했다. 새파란 건물벽과 문, 통유리창. 뭣보다 초가을 햇살이 반짝 빛났다.

창을 통해 본 내부 역시 분위기가 비슷했다. 마루 바닥에 나무 테이블이 놓인 모양새가 북유럽 스타일인지 일본식 인테리어인지 모호했지만, 어쨌거나 문 옆 옷걸이나 아래로 길게 뺀 백열등 조명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아늑했다. &quot;안으로 들어갈까&quot; A가 물었지만 음악 소리 대신 테라스의 적당한 생활 소음-지나가는 이들의 말소리, 자전거의 차임벨 소리 같은-이 더 끌렸다. 파란 문을 통해 들고 나는 손님들 구경하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동네 주민 같은 애기 엄마나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자리를 찾았다.

메뉴를 살피기도 전에 A는 햄버거 라이스를 강추했다. &quot;이 집에선 이걸 먹어야 해&quot;라면서. 평소와 다른 강권이었다. 샐러드 두 종류, 파스타, 라이스 두 종류밖에 없는 단출한 선택이라 딱히 고집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

왜 이렇게 늦지 싶을 때쯤 식사가 나왔다. 밥 위에는 단호박&#183;양파&#183;당근 등 구운 채소와 삶은 계란, 드레싱을 버무린 샐러드, 두 가지 치즈를 솔솔 뿌린 햄버거 스테이크가 올라갔다. 비주얼로나 맛으로나 딱히 자극적일 게 없는 가정식 덮밥. 데미그라스 소스는 달지도 짜지도 않았다. 그래서 왠지 더 건강해질 것 같았고, 열심히 숟가락을 놀렸다.

담백한 음식을 앞에 두고 A와의 수다 역시 꾸밈이 없었다. 근황이나 주변 이야기부터 시작해 각자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뜨끔한 충고와 조언도 기분 좋게 주고 받았다.

자리를 일어설 때가 돼서야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윤세영이 누구냐고. A는 자신있게 카운터를 지키던 단발머리 여자 매니저에게 눈길을 줬다. 한데 계산을 하며 물었더니 짐작이 틀렸단다. 매니저는 손가락으로 카운터 옆 키친을 가리켰다. &quot;저기 혼자 음식 해대는 청년 하나 있어요.&quot;

우리는 그냥 웃었다. 다음엔 진짜 윤세영을 만나보자면서. 다시 만날 핑곗거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글&#183;사진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서울 용산구 한남동 795-1, 02-795-3375,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일요일은 오후 9시까지, 월요일은 휴무, 쉬는 시간 오후 4~5시). 주요 메뉴는 리코타치즈 샐러드(1만1500원), 햄버그라이스(1만5500원), 아스파라거스오일 파스타(1만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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