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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한미외교 요람기(7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 평화조약이 조인되자 우리정부는 한일회담을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가 회담을 서둘렀던 이유는 재일 교포의 국적문제 해결이 시급했을 뿐 아니라 차체에 여려 현안들을 정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시일을 지연해 평화조약이 발효(52년4월28일) 된 뒤로 미루던 일목의 태도가 경화될 우려도 있었다. 우리로서는 일본이 아직 SCAP(점령군 최고 사령부)통치하에 있을 때 결말을 내는 것이 좋았다. 여기서 당시 재일 교포의 국적문제를 잠시 언급해야할 것 같다.
전후처리가 관계국간의 평화조약으로 결정되는 경우에는 재일 동포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그 평화조약으로 국적선택권을 부여받는 것이 국제적 선례였다.
그러나 재일 동포의 경우에는 대일 평화조약이 전쟁종료 후 6년이나 지나서 체결되었고 한국의 독립은 그 조약체결 이전에 기정사실화 했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졌다.
그때 우리측은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인의 일본국적은 우리가 취득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에게 강제로 덮어 씌웠던 굴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였다.
일본의 포츠담선언 수락(45년8월9일)으로 한국은 이미 굴레를 벗어났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48년)되었으니 국내외에 있는 모든 한국인은 한국국적을 회복했기 때문에 재일 교포도 당연히 외국인으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논리가 그런데도 일본은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외국인으로 다루는 것이 재일 동포에게 유리한때는 『그들은 아직 일본국적을 가진 사람』이라 하여 일본인같이 다루고 반대로 일본인으로 다루는 것이 교포를 위해 유리한때는 『아니, 그들은 일본인이 아니다』하여 재일 동포에게 외국인(전한국인)도 내국인(일본인) 도 아닌 「제3국인」 이란 특수한 칭호를 붙여 자기네 편리한대로 다루고 있었다.
그 결과 재일 동포는 패전 일본에서 일반 외국인이 가지는 특권적 지위는 인정받지 못하면서 외국인 등록을 해야하고 자녀에게 의무교육의 혜택은 받게 할 수 없으면서 외국인에게 금지된 권리나 자격(예컨대 광업권· 일본은행주주권 등) 은 똑같이 금지되는 등 기묘한 취급을 받고있었던 것이다.
60만 동포의 이처럼 억울한 사정을 미국이나 SCAP는 별로 이해하려들지 앉았으며 정 그렇다면 한일 당사자가 해결하라는 태도였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에 참석한 뒤 바로 이대통령으로부터 출장명령을 받았다. 로마의 유엔식량기구 회의에 1인 대표로 참석하고 부산을 경유해 귀임 하라는 것이었다.
51년9월말 나는 유학을 위해 고국을 떠난 지 만13년만에 전쟁중인 고국 땅을 다시 밟고 감회가 착잡했다. 나는 로마에서 우연히 얼마 전까지 주일대표부공사였던 김용주씨를 만나 동경까지 동행했다.
나는 이대통령에게 귀국인사를 했다. 이대통령은 나를 경무대별관(경남지사관저)에 묵게 했다.
나는 장면층리·변영태 외무·조병옥 내무장관을 차례로 예방하고 그때 일선지대였던 서울도 방문했다.
서울서는 이기붕 국방장관·김태선 서울시장을 만났다.
나는 10월 중순까지 부산에 있으면서 매일 이대통령을 만났다. 한미관계·유엔문제에 관해 보고도하고 지시도 수시로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통령이 불러 가보니 동경의「리지웨이」사령관에게 보낼 자신의 편지 초안을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한일 회담을 하자는 이대통령의 의사를 「리지웨이」 장군에게·통고하는 최초의 문서였다.
얼마 뒤 이대통령은 한일회담 예비회담이 10월20일 동경에서 개최된다는 사실과 우리측 대표의 명단을 발표했다.
우리측 대표는▲수석대표 양유찬 주미대사▲교체수석대표 신성오 주일대표부대사▲대표 유진오 고려대총장·임송본 식산은행총재· 홍진기 법무부법무국장· 갈홍기 주일대표부참사관등이었다.
일본측 대표는▲수석대표 궁정구정무외무차관 ▲대표 천승호외무사무관· 전중삼남 입국관리청실시부장· 평하건태 법무부민사국주간· 후궁호랑 외무성촐무과장· 좌등일사 외무성법규과장 등이었다.
이대통령은 수석대표인 양 대사를 부산에 불러 지시도 받고 나와 대사관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회의에 참석하도록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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