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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엔 의정이 없었다″|일본 조일신문 구보전기자가 보고 느낀 「북한의 9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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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 일반 국민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은 노동과 학습뿐. 거리엔 모두 특정 목적지를 향해 한눈 팔지 않고 곧장 걸어가는 사람뿐이었으며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산책하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일본아사히(조일)신문 「구보다」(구보전성일)기자가 본 북한인상기다. 「구보다」기자는 비동맹식량회의 취재차 지난 8월26일부터 약 2주일간 북한을 방문, 평양·원산·개성 등지를 둘러보면서 보고 느낀 『평양의 9월』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김일성흉장과 사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눈에 띄었다. 둥근 것·네모진 것 등 모양과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김일성흉장을 달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왼쪽에서 얼굴을 찍은 김일성사진도 가는 곳마다 붙어 있었다. 공공건물엔 물론이고 공원·호텔·버스나 열차·지하털·일반주택에까지 그의 초상화는 있었다. 방문하는 곳마다 이번엔 김일성의 「현지지도」가 기다리고 있다.
『평양의 지하펄은 김일성의 3백회에 걸친 현지지도로 완성했다』고 「광복」역장은 소리 높여 말했다.
평양병원에선 원장대리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병원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올바른 지도로 불과 9개월만에 완성했다.』
삼라만상 모든 것에 올바른 지도가 뻗쳐 있고 때로는 기적도 일으키는 주석을 국민은 「전지전능한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대도시치고 자전거가 없는 곳은 없다. 그러나 1백20만의 도시 평양엔 눈을 씻고 봐도 자전거를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트로리 버스 때문이다. 대로를 구석구석까지 달리는 이 버스노선에는 자전거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양시의 중심인 김일성광장의 돌계단에 털썩 주저앉아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다르다.
한적하게 산책하고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목적지를 향해 한눈 팔지 않고 곧장 가는 사람뿐이다.
즉 국민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과 학습이다.
아침 9시부터 하오 1시까지, 하오 4시부터 8시까지. 이것은 공식 노동시간이다. 이밖에 요일에 따라 「기술학습의 날」(화), 「육체노동의 날」(금) 등이 있다.
김일성의 뜻을 받은 김정일서기는 「속도전」을 전개하고 있다.
『해방직후엔 1년이나 걸렸던 생산을 1시간내에』 달성하기 위해 「보다 나은 것을 보다 빨리」다. 삽과 곡괭이를 메고 수건을 질끈 동여맨 젊은이들도 보였다. 밤낮으로 건설공사에 매어있는 「총격대」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바로 「속도전」의 대표선수들이다. 어린애들도 어른에게 지지 않는다.
학교 갈때나 올때는 남녀별로 20, 30명씩 떼를 지어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른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차렷자세로 경례한다. 『자동차 속에는 끗발센 사람이 타고 있다』고 교육받았음이 틀림없다.
교외로 한발짝 나오면 온통 논밭이다. 한적한 풍경이지만 여기도 「속도전」으로 야단이다.
이미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이나 89년엔 곡물 1천5백만t을 생산하겠단다. 『정말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무리』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단파 라디오를 갖고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2주간 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었을 것이다. 국내용 라디오·TV는 물론 신문도 김일성에 관한 뉴스뿐이다.
외국뉴스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란 대통령·수상 등의 폭사사건으로 이 시간은 세계가 들끓고 있을 때다. 그러나 이곳 매스컴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VOA방송을 통해 들은 내용을 말하면서 『왜 국민에게 알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우리의 우호국 이란으로서도 이 같은 사건은 결코 명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에게 알렸다고 해서 우리 공화국의 혁명추진에 도움되는 것도 아니다』는 대답.
이를테면 북한은 철저한 정보쇄국의 나라다.
원산농업대학 학생 5명과의 다음과 같은 대화로 그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방송을 듣고있나.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우선 듣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있다면 우리당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송을 듣는다.
-국제문제에 흥미가 없다는 말인가.
▲농업전문서적을 읽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찰즈」영황태자가 최근 결혼한 사실을 알고있나.
▲모른다.
-폴란드에서 자유노조의 스트라이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모른다.
-영국수상 이름은.
▲관심이 없다.(그러나 프랑스의 「미테탕」사회당 정부탄생에 대해서는 이곳에서도 대서특필했다는 애기다.)
-소련 서기장은.
▲브레즈네프.
-중공의 당주석은.
▲화국등주석이후 누가 됐더라?(여기서 잠깐 탈선해서)
-이곳엔 아베크 모습이 전혀 안보이는데 애인은 못 갖는가.
▲그렇지는 않지만 학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나는 애인을 가질 생각은 없다. 친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다.
-결혼상대는.
▲혁명은하루아침에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후계자를 두기 위해 결혼은 하겠지만 상대는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고 당의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
북한을 취재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일반국민의 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소원은 달성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 일본인 기자일행 7명을 맞아준 대외문화연락협회가 우리들의 희망을 참고는 하고 있다면서도 매일 매일의 일정에 따라 안내해준 곳은 초일류건물, 시설뿐이었다. 일반가정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그곳은 외국인용으로 생각되는 「모범적」인 것에 국한되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심지어 대동강 건너편에 건설 중인 주체사상타워 등 모범적인 피사체를 골라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일일이 체크했다.
『있는 그대로를 찍고싶다』고 애워했으나 『검토해 보겠다』는 태도일변도였다. 그것은 즉 안된다는 뜻이었다. 모두 『혹시 이상한 사진이라도…』식의 경계심에 찬 눈초리뿐이었다.
(조일신문 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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