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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녹화 땐 스태프들 눈물 글썽|시민의 애환 담고 숱한 문제 남겨…|KBS-TV「달동네」269회로 5일 종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걸어온 길목들은 서로 달라도 앞으로 가는 길은 크고 환한 길, 새벽부터 한밤까지 근심 잘 날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라네, 우리동네 달동네.』
서민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매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짙은 삶의 색채를 띠고 펼쳐지던 『달동네』 가 5일 (저녁8시10분∼9시) 2백 69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발소와 시계포는 터를 늘려 시내로 진출했고 배서방 네와 탁상필 네는 꿈에도 그리던 귀향과 승진을 이루는가 하면 이무기와 최팔봉의 결합 가능성이 짙어지며 노총각 덕칠이 드디어 장가를 든다는 해피 엔딩이다.
지난달 31일 마지막 녹화를 가졌던 『달동네』식구들은 정든 얼굴들과의 이별이 아쉬워서인지 대본에도 없는 눈물을 펑펑 쏟아 스태프진들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지난해 12월 이후 모든 시청률 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달동네』 가 첫회를 방영한 것은 지난해 10월 3일 건 TBC, TV를 통해서였다.
출발 당시만 해도 너무 코미디 같다는 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정각 10회를 넘기자 동네 꼬마들 입에서『똑순아』『똑순아』가 유행되고 주제가를 흥얼거리는 아이들로 눈에 띄어『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고 연출자 김재형씨(KBS예능2국 드라머 담당 부국장) 는 말한다.
11월 31일 민방이 통폐합되면서 12월 초 KBS 제1 TV의 지방 네트웍을 통해 『달동네』의 인기는 전국을 휩쓸었다.
작가 나연숙씨가 순전히 개인적으로 만들어낸『달동네』란 낱말이 이제는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동네를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어 버린 것만 보아도 이 프로의 인기도롤 짐작 할 수 있다. 『달동네 식당』『달동네 이발관』 『달동네 술집』이 곳곳에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달동네』가 그토록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이웃, 서민의 이야기라는 점, 무거운 테마보다는 한 가구 한 가구의 에피소드를 통해 드라머가 전개 됐다는 점, 가볍게 희화된 주인공들의 인기 등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생생한 취재가 큰 몫을 했다.
서울 봉천동 빈민촌들을 돌아보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나씨는 드라머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서울시내 변두리의 산동네는 빠짐 없이 돌아다니며 그들의 웃음과 눈물을 취재했다고. 아무리 봐도 산동네와는 인연이 없을 듯한 여자가 자기네 부엌을 들여다보고 안방도 기웃거리는 것을 수상히 여겨 적대시하던 산동네 주민들도『달동네』의 작가임을 알고는 융숭한 대접을 해주더라고 나씨는 흐뭇해한다.
이 프로를 통해 무명의 신인에서 일약 인기 탤런트로 부상한 행운아는 양순(장미희분)과 한 가정을 이룬 동철역의 백찬기씨와 버스학교를 운영하는 착실한 의대생으로 분한 김영기군. 백씨는 『달동네』전까지만 해도 늘 도둑·간첩 역만 맡던 10년 조역이었고 김군은 방송국에 막 발을 들여놓은 애송이 탤런트였다.「똑순이」 김민희양 역시 신인 아역배우에서 어른배우와 똑같은 개런티를 받는 연예계의 총아로 주가를 올렸다. 배서방 최현철씨, 춘자 최화연을 굳힌 인물들.
극중 결혼만 7건을 기록한『달동네』는 원고지 분량 1만8백 여장, 하루 평균 35장을 쓴 셈이다.
작가 나씨와 연출가 김씨는 세무 공무원 (극중 김과장) 의 이미지 쇄신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각각 대통령 포상과 재무부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이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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