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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낮과 밤|본사 주원상특파원 부투레슈티를 가다(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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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자는 숙소인 리도호텔에서 식사 때마다 웨이터와 다투곤 했다. 생각보다 항상 음식값이 더 나와서였다. 메뉴에 적힌 가격과 봉사료12%를 보태면 계산은 뻔한데 청구서는 매번 예상가격을 웃돌았다. 몇 차례는 그냥 넘어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한번 따졌더니 웬걸 웨이터의 계산은 정확했다. 토마토케첩 한숟가락에 2레이, 빵 한조각에 1레이, 풋고추1개에 2레이 등등…. 공정환율은 1달러에 10레이나 암시세는 4∼5배다.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한 손님이 토마토케첩이나 다른 소스를 함께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또 소스값을 따로 받는 레스토랑은 생전 처음이어서 웃고 말았지만 받아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받아 내자는 뱃심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루마니아인들의 관광객의 달러에 대한 집착은 아무래도 거국적이다. 관광객전용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거스름돈을 잘 내주려 하지 않는다. 잔돈이 없다는 구실로 다른 물건을 더 사든지 레이로 받아가라고 하기가 일쑤였다. 거스름돈을 줄 수 없다면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위협(?)해야 마지못해 잔돈을 내주는데 이건 더 희한하다. 거슬러주어야 할 달러액수만큼의 프랑스프랑화나 스위스프랑, 또는 서독마르크 등을 적당히 섞어 내준다. 손아귀에 한번 들어온 달러는 하늘이 무너져도 내놓을 수 없다는 태도다. 이 나라의 관광법에는 14세이상의 외국인관광객은 1일 10달러이장을 의무적으로 쓰도록 규정돼 있다. 외화확보시책의 일환이다. 금년부터 시작된 제7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목표가중화학공업의 기반조성이고 보면 달러에 대한 집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세계2차대전직전까지 농업국가였던 루마니아는 2차대전후공산정권의 수립과 함께 동구공산국가 가운데 가장 공업화된 나라중의 하나로 손꼽히고는 있지만 아직 경공업단계. 부쿠레슈티에서 발행되는 프랑스어판 주간지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공업화시책이 큰 결실을 맺어 지난 38년 연간 23만8천t에 지나지 않았던 철강생산량이 현재 2천2백70만t으로 늘어났고 석유도 매년 1천3백만t가량이 채굴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발행된 한 통계연감에는 루마니아의 천연가스매장량이 1천6백30억입방m로 세계6위, 밀생산은 세계11로 기록돼 있다. 연간수출고는 3백68억2천1백만레이 (78년)로 가구와 농업용기구·섬유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소련·서독·동독·체코·폴란드·미국·중공·헝가리·이탈리아·프랑스 등이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4백6억1천9백만레이였다. 구미각국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동구 여러나라가 주2일 휴무제를 채택하고 있으나루마니아의 경우는 7차5개년계획이 끝나는 8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유니버시아드 대회기간 중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한 루마니아 기자의 설명으론 현재는 한달에 1주일만 주2회 휴무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82년엔 한달에 2회. 83년엔 3회로 단계적으로 늘려 85년부터는 완전 주2일 휴무제가 실시되리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90년에 가서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시민들의 일반 생필품 구입은 배급재가 없이 모두 현금으로 자유롭게 사고 있었으며 물품들이 조금 조잡하긴 해도 물량은 달리는 것 같지 않았다. 푸줏간이나 빵가게 앞은 항상 장사진을 치고 있었지만 물건이 달려서가 아니라 개점시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라고 한 시민은 설명했다. 이곳의 식품점들은 프랑스나 서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루 3차례 끼니때마다 문을 열기 때문에 줄을 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투다. 기자는 부쿠레슈티에 머무르는 동안 두 가지 일로 당황한 일이 있었다. 하나는 필름을 구하지 못해서 애를 태운 일이며 또 다른 한가지는 소의 혓바닥요리를 시켰더니 동이 났다는 호텔식당 주방장의 얘기를 들었을 때다. 서둘러 입국하느라 깜박 카메라용 필름을 챙기지 못해 부쿠레슈티시내를 샅샅이 뒤졌으나 원하는 필름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나온 관광안내책자에도 분명히 필름을 챙겨가라는 주의말이 있었는데 결정적인 실수를 한 셈이다. 물론 필름가게는 많았지만 필름이 문제였다. 먼지가 켜켜앉은 중공제 필름뿐이었으니 어디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는가. 결국 다른 기자에게 필름 한 통을 빌어 쓰고 끝냈지만 동구여행자에겐 무엇보다 필름을 잊지 말도록 말하고 싶을 정도로 속을 태웠다. 또 한가지 쇠혓바닥 이야기는 이렇다. 숙소로 잡은 호텔이 부쿠레슈티 최상의 호텔중의 하나였지만 음식이 시원치 않았다. 특히 육류는 질이 안 좋아 몹시 질겼는데 기자는 질긴 고기가 질색이어서 식사 때마다 소의 혓바닥요리만 들었다. 약 열흘간 점심·저녁을 소의 혓바닥만 찾았더니 하루는 주방장이 나와 『이제 쇠혓바닥 요리는 주문해도 더 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루마니아 소의 혓바닥을 다 먹어 버렸어요』 라며 정색을 하곤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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