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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은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금융기관의 기업재무구조개선유도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은 금융정상화로 가는 단계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1일 금융기관대표자회의는 중화학업체에 대한 3천억원의 원리금상환을 3년간 유예시켜주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재산을 처분하는 기업만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
또 금융기관들은 기업이 회사채 상환을 위한 사채 발행을 하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경우 등에도 유상증자, 기업 공개 같은 노력을 해야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금융기관이 은행대출을 기업의 재무구조개선과 연관시키는 것은 자기 자본비율이 16%선에 불과한 현상을 금융지원의 차등적용으로 시정하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국내기업의 취약한 재무구조가 더욱 더 타인자본에 과도하게 의존토록 하는 요인이 되는것은 물론이고 경쟁력약화의 원인도 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제개발과정에서 항상 만성적인 대금수요가 공급을 초과해왔고 특히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정책금융의 비중 증가로 기업도 정책금융이라는 파이프에 매달려야만 정책이 요구하는 선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는 특질은 간과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서 금융자금자체가 정책금융과 상업금융의 혼재로 대출업무의 일관성을 결여하고있기 때문에 기업으로 하여금 무리를 해서라도 자금을 끌어내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또 금융기관은 그 나름대로 대출금의 안전회수를 위해 담보확보에만 신경을 쓴 결과, 기업의 부동산소유를 부채질해온 면도 없지 않았다.
적어도 은행대출에 상응하는 이상의 담보물을 확보해야만 자금의 조달경쟁에서 이겨 나갈수 있었다.
이처럼 금융의 여신 메커니즘이 왜곡되어 자금의 비효율적인 유통을 조장해놓고 이제 와서 기업의 재산처분을 일방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조치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우선 금융대금의 유통경로를 바로잡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즉 시은의 민영화를 조속히 단행하여 일반은행은 상업베이스에 의한 금융업무를 독자적으로 해나가고 정책금융은 특수은행이 전담하도록 금융업무를 정상화해야한다.
일반은행이 철저히 상업베이스에 따라 금융업을 영위해 나가면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점유현상도 가능한 한 제할 수가 있다.
담보위주에서 벗어나 기업의 사업성·재무구조 등을 따져 충분히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 일반은행이 과감히 신용대출을 확대해 나가고 그것이 은행사이의 경쟁을 유발토록 된다면 지금의 여러가지 문제점도 해소되는 것이다.
정부의 중화학정책에 맞추어 무리한 투자를 하도록 해놓고 이제와서 단기문내에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를 기업만을 대상으로 부동산·관계회사주식 등을 모두 처분하라는 은행장회의의 요구는 무리다.
마찬가지로 회사채발행의 경우도, 간접금융에만 매달리지 말고 직접금융도 이용하라고 권장해놓고 오랜 경기침체로 상환능력이 쇠약해졌다 해서 대출을 거부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국민경제 발전에 긴요하고 사업전망이 뚜렷한 기업인데, 그 경영상태가 일시적으로 악화된다고 해서 금융기관이 그를 외면한다는 것은 금융업무의 본령은 아닐 것이다.
이는 모두 금융기관이 비경쟁 환경에서 금융자금은 특혜의 일종이라는 안이한 운영방식을 해 온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금융정상화가 무엇보다 급한 선행조건이라는 것을 다시금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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