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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 아메리카 2백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허약한 미국, 쉽게 넘볼수있는 미국,이것이 7O년대의미국상이었다.「카터」가 대표한 나약한 이미지,「닉슨의 부도덕성, 그리고 베트남 공산화에 나타난 미국의 배리감은 것들이 한데 뭉쳐 미국의 대외적인 신뢰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우방과 동맹국들간에는미국으로부터의 심리적인 원심분리현상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다.
미국 스스로가 드러낸 이런「힘의한계는 이란회교혁명,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 베트남의 캄보디아침공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80년대의 미국은「강력한 미국」의 이미지롤 가지고 출발했다.「레이건」의 결단력이「카터」의 우유부단한 자세와 대체되고,「카터」의 여성적인 인상이「레이건」의 남성적인 인상으로 교체되어 미국은 다시 스트롱 아메리카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미국이 처음으로「힘의 한계」를 전제로 우방의 포기를「선언」한 것은69년의「닉슨·독트린」이다. 그때 벌써 미국의 월남 퇴각, 따라서 인지반도전체의 공산화는 예고되었던것이고, 아시아-대서양지역에는 힘의 공백이 예상되었다.
71년의「닉슨·쇼크는미국이우방의 사정이나 이해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국익만을 추구하는 정책의 또하나의 좋은 예가 된다.
미국의 우방들, 특히 아시아의 비공산국가들이 다투어 중공및 소련과관계개선을 모색한 것도「닉슨」의 이름올 딴 독트란과 쇼크의 결과라는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되어있다.
그런 우방들을 한층 소외시킨 것이「카터」의 인권정책임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일이다. 그 인권외교의가장 비극적인 회생자가 이란의「팔레비」왕정이다.
「레이건」행정부는 7O년대 선임자들의이런 정책노선에 철저한 비판을 가하고 인권보다는 우방, 데탕트보다는대소 힘의 우위확보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이끌어가고 있다.
서구의 동맹국들은「래이건」의 강경노선이 냉전의 부활이 아닌가고 불안해 하면서 데탕트유지를 강조했지만오타와선진국정상회담을 계기로「레이건」의 입장이 상당히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강경한 자세를 가장 구체적으로, 가장 분명히 나타낸 것이 북괴가 미국의 SR-71정찰기에 미사일공격을 가한데 대한 미국정부의 반응이다.
국무성과 국방성은『그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중공과 소련에 전달을 요청했다』는 성명을발표했다.「레이건」대통령고문인「에드·미즈」는『그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면 북괴의 미사일기지를 공격하겠다』고 대북괴경고의 강도를 한층높였다.
뒤이어「조지·부시」부통령은 『미국에 대해 도발행위를 하고도 보복을받지 않는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했다.「부시」의 이 한마디야말로 초년대의 미국과 80년대의 미국의 차이를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으로 북괴·소련·베트남같은 나라들이 깊이새겨들어야할 대목이다.
「레이건」은 언제나 중서부출신 특유의 수줍은듯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그 미소 뒤에 숨은 의지와 결단력은예산안과 멸세안에 관한 대의회 투쟁, 그리고 항공관제사 파업의 처리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음을 호전적인나라들이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미관계만 해도 7O년대의「불편한관계」가 80년대의 긴밀한 동맹관계로 정상화된 것이「레이건」의 등장, 그의 우방중친정책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친구를 얻기위해 지금의 친구를 버리지 않겠다는「레이건」의 공약, 대소·대북괴강경자세, 그리고「레이건」이 취임후 지난 2백일동안에발휘한 정책의 추진력은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우방들을 크게 고무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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