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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돈|김종해(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3년 전 H대학 부속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고 두달동안 입원해 누워 있을 동안 나는 보다 깊은 삶의 심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삶의 빛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절실한 인식이었다.
그 무렵 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온건히 생과 사의 두 가지 명암밖에 없었다.
수술을 받기 전날 밤, 금식 팻말이 붙여진 병상의 초록빛 시트에 음모마저 면도날로 밀어진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서 나는 밤새도록 신을 향해 걸어갔다. 푸르스름한 새벽의 보라 빛이 병실 창문을 열고 들어올 동안 나는 신을 향해 처절하게 걸어갔다. 부귀와 권세와 명예가 아닌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것을 그분에게서 돌려 받기 위함이었다. 생명에 대한 갈구였다.
그것뿐이었다. 온전한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일보다 더 축복 받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수술이 끝난 며칠 뒤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며 이웃 병실을 나들이하면서 생명과 인체의 부속이 망가진 사람들을 만나볼 동안, 시체실과 냉동실로 들어가는 병실의 이웃 사람들을 지켜볼 동안, 응급실에서 생명이 궤멸되어 가는 중환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나는 삶에 대한 전율을 느끼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상 위에 떠도는 부귀와 권세와 명예가 얼마나 허망하고 또 허망한 것인가.
튼튼하고 건강한 몸으로 이 병동을 다시 빠져나갈 수 있다면, 10년 동안 절약하고 저축해서 가까스로 마련한 집 한 채쯤 날려버리는 일이야 대수로운 일인가. 우리가 지닌 생명의 끊임없는 운동으로 황금을 만들 수는 있지만 황금으로 생명을 살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 노력하고 땀흘린 그것만큼 온전히 거두어들이는 대가이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일하지 않고 씨뿌리지 않은 자에게 거두어들이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돈을 원한다. 그려나 땀흘려 일한 만큼의 몫을 원할 뿐이다. 부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로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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