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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영어 절대평가 못할 것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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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를 현행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상대평가는 응시자를 줄 세워 등급을 나누는 반면 절대평가는 일정 수준 이상이면 모두 최고 등급을 준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은 교육부 관료들이 아니라 청와대가 주도했다. 그만큼 추진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해당 정책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입 변화 기류를 잘 살펴보면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어도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다.

 우선 대입이 수시모집 위주로 변했다. 올해 고3이 치르는 2015학년도 대입에서 전체 대학 기준으로 수시 비중이 65%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 등은 70%를 훌쩍 넘는다. 2016학년도에는 더 늘어난다. 전체 대학 기준으로 66.7%이고, 한양대·중앙대도 수시에서 70% 이상 뽑는다. 수시에서 수능은 최저학력기준으로만 반영되는데,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 최고 등급 충족이 쉬워진다. 수시에서 수능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 대학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가 수시 일반전형에서, 한양대가 수시 모든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없앴다. 정부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는 만큼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은 갈수록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내신 성적과 학교 내 활동을 주로 보는 전형은 증가 추세여서 수능에만 목을 매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절대평가가 되면 영어 학습 동기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와 관련해선 현행 수능이 어떤 공부를 하게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수능은 EBS 교재에서 70% 연계 출제되는데, 특히 영어는 ‘EBS 교재만 보면 된다’고 회자될 정도다. 교재의 지문을 달달 외우고 급하면 한글 번역본만 읽는 수험생도 있다. 국내 중·고교 영어시험은 여전히 문법과 독해 위주다. 초등학교까지 원어민에게 회화를 배우던 아이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to-부정사와 간접의문문 같은 문법용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갈아타는 실정이다. 수능 영어가 상대평가로 유지된다고 10년 이상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도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국내 교육이 바뀔 리 없다.

 이른바 풍선효과로 수학 사교육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그렇지만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해도 초등학교 이하 영어 사교육은 크게 줄지 않을 것 같다. 학부모들은 수능 때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길러주려고 회화 위주의 사교육을 시킨다. 수능 대비용 영어 사교육은 감소할 텐데 이미 수학 사교육도 차고 넘치는 상황이라 고스란히 옮겨가진 않을 수 있다. 대학에서 영어 면접·에세이를 신설할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정부 눈치를 보느라 과학올림피아드 성적도 반영하지 못하는 대학들이 반기를 들기 쉽지 않다.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현 정부는 중1이 치를 2020학년도 대입 정책까지 정하게 된다. 학생부 위주로 대입을 바꾸려는 정부의 계획을 감안하면 수능 영어 평가체계보다 학교 영어교육 강화 방안에 지혜를 모으는 게 낫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