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쓰레기터서 폐품 주워 남편학비 벌던|주부가 불도저에 치여 숨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신학에 뜻을 두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남편을 공부에만 전념토록 하기 위해 쓰레기폐물을 수집, 남편의 학비를 대고 가계를 꾸려나가던 아내가 남편의 2학기 개학첫날 쓰레기하치장 불도저에 깔려 숨졌다. 25일 상오7시10분쯤 서울 상암동448 난지도 쓰레기하치장에서 남편의 학비를 벌기 위해 폐품수집을 하던 이기순씨(30·상암동482)가 서울시중기관리소 소속 불도저(운전사 한상옥·43)에 깔려 중상을 입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하오 숨졌다.
사고는 쓰레기장 정지작업을 하던 운전사 한씨가 쓰레기더미 밑에서 폐품을 줍던 이씨를 보지 못한채 불도저를 후진시키는 바람에 일어났다.
숨진 이씨는 고려신학교(경기도인천시효성동) 신학부 1년에 재학중인 남편 서창태씨(30) 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직장을 그만두게 한뒤 지난 2월부터 자신이 쓰레기장에서 빈병·비닐등 폐품을 수집해 팔아 하루3천∼4천원의 벌이로 가계를 꾸려왔다.
상암동 반석교회 집사이기도 한 이씨는 69년 전남학교여고를 졸업한 뒤 77년 서씨와 결혼했으나 인쇄소를 경영하던 서씨가 사업에 실패하자 금년 2월 난지도에 있는 3평 크기의 판잣집으로 이사해와 어렵게 살아왔다. 이들 부부사이에 자녀는 없다. 남편 서씨는 사업에 실패한 후 신학에 뜻을 두고 목사가 되겠다며 3년 과정의 신학부에 입학했으며 부인인 이씨는 남편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가계를 도맡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남편 서씨와 함께 반석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드렸으며 상오6시부터 하오2시까지 8시간동안 폐품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왔다.
이씨의 한달 최고수입은 고작 12만원. 이 가운데 이씨는 매달 1만원을 「십일조」로 꼬박꼬박 교회에 헌납하고 5만원을 남편의 학비로 저축하는 피눈물나는 절약생활을 해왔다.
이씨는 남편의 2학기 등록금 20만원중 10만원을 예납, 등록시킨 뒤 나머지 1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엔 해질 녘까지 폐품을 수집했다고 남편 서씨는 말했다.
전남함평군학교면 중놈집안에서 태어나 사촌언니의 소개로 남편 서씨를 알게되었으며 교우나 동네주민들은 『이씨가 깔끔하고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로 부부간의 정도 두터웠다』고 말했다. 남편 서씨는 『결혼 후 남편을 위한 희생으로만 살아온 착하기만 한 아내가 이렇게 비명에 가다니 죄책감이 든다』며 아내의 유해를 붙들고 목이 메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