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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양상은 그 사회의 모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만인에게 유해하면서 자기자신도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알지 못하는 무가치한 인간」의 생명을 말살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죄와 벌』의 대학생「라스코르니코프」는 세기말 제정러시아의 허무적 지성의 초상이다.
그러나 그 창백한 지성은 노파를 살해한 죄의식의 고통 앞에서 자기파멸의 허망을 드러내고 무릎을 꿇는다.
모든 것을 바치고 모든 것을 감싸는 어린 창녀「소냐」-. 성녀라고나 할 그 더럽혀질 수 없는 맨 마음의 사랑과 믿음 앞에서 초인을 꿈꾸던 대학생「라스코르니코프」참회를 통한 구원을 얻는다.
범죄가 사회상의 반영이라면「라스코르니코프」의 살인은「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당시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복더위 속에 매일같이 터지는 강력 사건.
서울 북부세무서원 청부살인사건, 원효로 여 갑부 살해사건, 화장품가게 여주인 피살사건.
시꺼멓고 굵직한 신문활자를 접할 때마다 사무실은 동료들의 한숨으로 가득찬다.
『이까짓 쥐꼬리만 한 월급받고 아둥바둥 살면 뭐하나. 어느 친구 손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걸.』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엄청난 죄악일 뿐 어떠한 이유나 동기든 용납 될 수가 없다.
사람을 파리목숨 다루듯한 이 사건들이 하나같이「돈」때문이었다는 것이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라스코르니코프」같은 절박한 지적 갈등도 없고 신파조일 망정 사랑의 낭만조차 없다.
배부세무서원 강정근씨를 살해한 해결사는 20년의 우정(?)에서 비롯된 의리를 칼부림으로 갚았다고 했다.
상인과 해결사의 우정과 의리가 맡은 일에 충실한 세무공무원의 희생으로 결코 지켜질 수 없는 데도 말이다.
돈은 물론 의리와 우정도 인간의「생명의 존엄」과「인격의 고귀함」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화장품가게 여주인을 찌른 20대 범인이 숨진 여인에게 14살난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과 같이 고아가 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수했다는 자백에 인간회복의 한 가닥 가능성을 본다.
더위에 지친 머리를 식히고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착하다는 말을 서로가 믿을 수 있도록 힘쓰자.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현 대한교육보험 전산부 근무【구성회(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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